[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1-02-15 17:53


(31) 예배의 목마름

영성이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라면 그 생명은 예배를 통해 공급된다. 예배는 의식이나 제도가 아니라 생명의 전이(轉移)다. 예배를 이루는 두 요소는 ‘신령과 진정’(요 4:24)이다. 신령은 성령의 은혜요, 진정은 진리의 말씀이다. 성령의 역사 없이 말씀 없고, 말씀 없이 성령의 역사 없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고, 말씀은 성령의 은혜를 드러낸다. 성경의 문자가 말씀이 되게 하고, 말씀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성령은 예배의 알파와 오메가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형식이나 순서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미사를 중심으로 예배하고, 개신교회는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하지만 미사나 설교보다 앞선 것은 성령님의 역사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미사는 단순한 빵이 되고 설교는 단순한 말이 된다.

미사를 통해 빵 한 조각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설교를 통해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다. 예배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가난한 마음이다. 예배의 가장 무서운 적은 설교의 실수나 성가대의 빈약함, 음향, 영상의 결함이 아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교만한 마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7, 19).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예배의 시작이다. 나는 벌거벗었고, 나는 눈이 멀었고, 나는 심히 곤고한 자라는 것을 아는 것이 예배의 출발이다.

예배는 영적 목마름이다. 목마름은 만족하지 못한 욕구의 아픔이다. 인간의 부재 중에서 하나님의 부재가 가장 큰 부재다. 모든 목마름은 하나님이 없어서 생기는 영적 증상이다. 하나님 없이는 누구나 목마를 수밖에 없다. 목마른 자가 할 일은 목숨 걸고 물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구했다.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는 죽어가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죽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가 지난 40년 동안 해오던 것을 하고 있을 뿐이고 내가 영원토록 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상에 살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천국에 간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모이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상으로 간다. 우리는 자유로워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예배하려고 태어났다. 예배는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으로 채우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일꾼은 많아도 주님과 함께하는 예배자는 심히 적다. 일(work)을 버려야 예배(worship)가 된다. 예배의 자리에 앉는 것은 다만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곤고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헌금은 물질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가득한 탐욕을 바구니에 집어넣고 가난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예배는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이다. 그나마도 평생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를 죽고 살게 하는 생명의 통로다. 윌리엄 템플이 말한 대로 어느 시대에나 신자의 수준을 능가한 예배를 드린 적 없고 예배의 수준을 능가하여 세상이 변화된 적 없다. 예배는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목마름이다. (한신교회)

이윤재 목사(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