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일반 약 슈퍼 판매 논란
입력 2011-02-14 17:53
일반 약의 슈퍼마켓 판매 허용 문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미국에선 슈퍼에서 감기약을 파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라고 물은 게 발단이 됐다.
찬성하는 쪽은 국민의 편의를, 반대하는 쪽은 의약품 부작용과 오남용 우려로 대변되는 국민의 안전을 내세운다. 기획재정부와 의사회, 시민사회 단체는 찬성, 보건복지부와 약사회는 반대하고 있다. 여론은 일반 약의 슈퍼 판매 추진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포털 사이트 야후는 지난해 12월 24일부터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감기약의 슈퍼 판매’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조사는 오는 25일까지 계속된다. 14일 오후 4시 현재, 총 5만5378명이 참여해 77.6%(4만2947명)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반대는 22.1%(1만2219명)에 그쳤고, 기타 0.4%(212명)로 나타났다. 네티즌뿐이 아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소비자보호원이 지난해 4월과 10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찬성이 각각 80%, 71.2%로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를 필요로 하는 전문 약과 그렇지 않은 일반 약으로 구분된다. 일반 약이란 외국의 경우 드럭스토어나 슈퍼마켓, 편의점 등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 약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를 금지하고 있다. 해열 진통제 위주의 감기약과, 소화제, 정장제, 비타민제, 피로회복제, 드링크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일반 약이라고 부작용 위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약국 외의 장소에서 일반 약을 판매할 경우 반드시 관리약사 또는 실무교육을 받은 전문(등록) 판매원을 두도록 하고 있다. 또 약국 외의 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는 약품을 따로 분류, 지정해 놓고 있다.
“환자들은 약국에서 일반 약을 사먹는 비용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보험으로 약을 타서 먹는 비용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경향이 있다. 약국에서 일반 약을 사 먹고도 낫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는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서울 종로 지역에서 의원을 경영하는 한 개업 의사의 말이다. 만약 일반 약의 슈퍼마켓 판매가 허용된다고 해도 전문가의 조언을 꼭 들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은 병원 행을 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약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약국을 찾아야 할 사람은 결국 약국을 찾을 것이란 얘기다. 슈퍼마켓의 판매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조언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제도를 무작정 도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국내 시판 의약품을 재분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반 약 대 전문 약의 비율이 2대 8이다. 일본 등 의약 선진국은 4대 6이다. 전문 약으로 분류된 것 중 일부를 일반 약으로, 일반 약 중 일부를 약국 외의 장소에서 팔아도 되는 ‘슈퍼용 약(대중 약)’으로 선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뜻밖의 부작용이나 위해 제품 발생 시 신속한 보고 및 회수를 위해 대중 약 전문 판매원 양성 및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2004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한 일본은 2009년 약사법을 개정, 1년 이상 약국 등 의약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에 한해 소정의 교육 및 자격시험을 거쳐 판매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흔히 약은 양날의 칼과 같다고 한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선정(善政)은 국민을 이롭게, 편하게 만들고 악정(惡政)은 해롭게, 불편하게 만든다.
군이부당(群而不黨)이란 말이 있다. ‘무리지어 어울리되 편을 짜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에선 문제가 없는데 한국에서만 문제가 되는 안전성(?)을 이유로 국민의 편익을 외면하는 쪽에서 곱씹어 새겨야 할 말이지 싶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