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강렬] 거룩한 용서

입력 2011-02-14 17:52

#네덜란드계 유대인으로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 저자인 코리 덴 붐 여사는 소녀시절 독일 라벤스부르크 수용소에서 언니 벳시와 함께 온갖 굶주림과 학대의 신고를 겪었다. 독일 간수들은 이 처녀들을 포함한 수용자들을 발가벗겨 목욕을 시키며 온갖 조롱을 했고 심지어 채찍으로 때렸다. 전후 그녀는 ‘화해와 용서’라는 메시지를 들고 전 세계를 누볐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메시지를 전한 뒤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가장 악랄하게 고문하고 언니 벳시를 채찍으로 때려죽인 간수였다. 코리 여사는 “나는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마음으로 외쳤으나 끝내 그의 손을 잡았다.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 흑백차별)의 대표적 희생자인 남아공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간악한 백인 정권 아래서 무려 27년 동안 수감됐었다. 그는 그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보복의 칼 대신에 ‘화해와 용서’로 백인들을 끌어안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3공 때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돼 대한해협에서 수장되기 직전 살아났다. 그는 다시 5공 정권 아래서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김 전 대통령도 집권 후 자신을 박해한 박정희, 전두환 두 세력에게 보복하지 않고 ‘화해와 용서’의 손길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똑같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 차남으로 한국일보 기자였던 마종훈씨는 1994년 자신의 가게에서 흑인 강도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범인 조니 배스톤은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오는 3월 10일 오하이오 주 법에 따라 형이 집행될 예정이다. 마씨 아들 피터 마(38)씨를 비롯해 가족들은 최근 “범인을 사형시킨다고 가족들 심정이 나아지거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시는 것은 아니다. 사형은 어떤 좋은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며 사형을 시키지 말 것을 탄원했다.

#예수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의 무한 용서를 강조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믿음이 깊다고 쉽게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 자신이나 가까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상대를 보복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은 종교를 넘어선 거룩한 행위다. 요즘 신앙을 가진 이들 간에 화해하고 용서하는 데 보통사람들보다 더 인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범, 배스톤을 사형시키지 말아 달라고 미국 법원에 탄원한 마종훈씨 아들 피터씨 등 가족들의 ‘거룩한 용서’가 팍팍한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