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정두언 의원 말이 옳다
입력 2011-02-14 17:41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를 낙마시킨 결정타는 로펌에서 받은 월 1억원의 급여였다. 알고 보니 정씨뿐 아니라 법조계 출신 상당수 고위직이 로펌에서 비슷한 급여를 받았다. 정씨는 억울한 측면이 있겠다. 홍익대 청소근로자를 비롯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일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가 사회문제화된 시점을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월급이 100배 이상 차이나니 아무리 시장경제 원리를 들이댄들 국민 정서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갈등이 많은 나라에 비정규직 문제가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흡사 우리 사회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는 양상이다. 과거에는 직장만 말하면 신분이 파악됐지만 지금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를 밝혀야 한다. 명절에 친척이 모이면 절반은 비정규직이란다. 공단 주변에서는 정규직 자녀들과 비정규직 자녀들이 따로 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규·비정규직 양분되는 사회
비정규직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위기극복 명목으로 정리해고제와 함께 파견근로제가 도입되면서 크게 확산됐다. 당시는 기업들이 워낙 어려운 때라 도입의 필요성이 공감을 얻기도 했다. 문제는 비정규직이 너무 양산됐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현재 비정규직은 828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49.8%를 점하고 있다.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있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며칠 전 TV에 비친 모 대기업의 9년차 비정규직은 자신의 월급이 평월에는 130만원, 야근이 많은 때는 150만원 정도라고 했다. 한 가족의 가장이 이런 월급을 받으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서울시내 구청들이 청소근로자들을 어떤 곳은 비정규직으로, 어떤 곳은 정규직으로 쓰는 모양인데 비정규직 임금은 월 100만원 안팎인데 비해 정규직인 곳은 200만∼300만원, 심지어 서초구청의 경우 350만원까지 준다고 한다. 기업이 아닌 관공서에서도 고용정책에 따라 이렇게 처우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복지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다. 이를 외면하고 복지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의 최대 희생자이고 양극화의 원인”이라면서 “이에 대한 해결 없이 보편적이니 선별적이니 복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한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사례를 들었다. 유권자 자제들 취직 부탁을 받고 직장을 알선해 주면 1년도 못돼 그만둔다는 것이다. 월급이 적어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정규직 청년들은 결혼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비정규직을 그대로 둔 채 복지를 논하고 육아정책을 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월급은 130만원만 받고, 신분은 불안하더라도 아이는 둘, 셋 나아서 잘 키우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지 않은가.
여야가 함께 해법 모색해야
현실적으로도 이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다. 정규직 전환을 위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투쟁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확산되면서 1년 내내 나라를 시끄럽게 할 것이다. 여론도 비정규직 투쟁을 옹호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홍익대 정문에는 ‘청소아줌마들을 지지합니다’라는 과별, 단과대학별 플래카드가 수없이 걸려 있다.
물론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엄두를 못 내고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여야가 합심해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면 실마리를 왜 찾지 못할까. 정치권은 있는 예산 끌어다 나눠주는 쉬운 복지에 매달리지 말고 비정규직 해법부터 모색하길 바란다. 그게 진짜 정치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