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8) 쌍둥이 가수 수와진(안상수·안상진)

입력 2011-02-14 22:01


26년째 거리 공연으로 성금 모아 심장병 어린이 800여명에 새생명 선물

“풀꽃처럼 살아야 해 오늘도 어제처럼/저 들판에 풀잎처럼 우리 쓰러지지 말아야 해/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행여나 돌아서서 우리 미워하지 말아야 해/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날까지/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 해/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1987년 유명 작사가 이건우는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수일째 심장병 아동 돕기 성금 모금 공연을 하던 쌍둥이 밴드를 우연히 본 뒤 인상에 남아 노랫말을 썼다. 후에 유영선 작곡가의 멜로디가 더해져 이 곡은 그 쌍둥이 밴드에게 건네졌고 1988년 세상에 나와 대히트를 쳤다. 수와진(안상수·상진), 그리고 그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노래 ‘파초’ 이야기다.

수와진(51)은 이후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서도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성금 모금 공연을 하며 이 노래를 수천 번도 넘게 불렀다. 노랫말처럼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왔다.

26년째 거리 공연을 이어오며 ‘파초’를 닮아가는 수와진 형제를 지난 7일 인천 계산동 ㈜토브아이씨엔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곳은 수와진이 운영하는 공연 기획사다. 형제는 평일 낮에는 이 회사에서 공연기획과 광고제작을 하고, 저녁에는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하며 밥벌이를 한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쉴 법도 하지만, 형제에게는 토요일에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종일 ‘심장병 아동 돕기 성금 모금’ 공연을 한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빠지지 않는 일이다. 지난 2∼6일 설 연휴 기간에도 상수는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에서, 상진은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에서 공연에 나섰다.

“따뜻해서 좋긴 좋았는데, 작년하고 확실히 달랐어요. 모금액이 작년의 반도 안돼요. 구제역이 겹쳐서 그런지 휴게소에 사람이 많이 없기도 했죠.”(상진)

형 상수씨도 “문막 쪽도 시원찮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사랑의 열매’ 비리 터지고 나서 성금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세상인심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는 상수씨의 농담 한 마디로 사라진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우리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아. 우리를 ‘가요무대’로 보고 있어, 우린 ‘뮤직뱅크’인데 말이야.”

3분 간격으로 태어난 형제는 인터뷰 내내 “왜 네가 형이냐”(상진), “인터뷰할 때 다리 좀 떨지 마”(상수) 등등 서로 티격태격했다. “목소리가 걸걸한 게 듣기 싫다”고 상진씨가 구박하자 상수씨는 “노래를 하도 많이 불러서 그렇다”고 맞받아쳤다.

상수씨의 해명은 농담이 아니다. 토요일 하루 8시간씩 거리공연을 하고 나면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목이 쉬어 대화조차 하기 힘들다. 봄에는 꽃가루와 황사, 여름이면 뙤약볕, 겨울에는 추위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전기를 끌어오고 무거운 공연 자재를 옮기는 일을 오랫동안 직접 해오다 보니 형제의 손은 울퉁불퉁하고 거칠다.

“몸이 너무 아파 안 나갈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나중에 꼭 후회가 돼요.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지요.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호응을 안 해주면 가끔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그런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우리를 알아봐주고 박수 치고, 성금을 넣어주는 팬들을 볼 때는 저절로 신이 납니다.”(상진)

이들이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는 자신들의 히트곡 ‘새벽아침’ ‘파초’ 뿐만 아니라 포크, 트로트에 민요까지 다양하다.

수와진이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거리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가수 연습생 시절이던 1985년. 어릴 때 막내동생과 할머니를 심장병으로 잃은 아픔을 갖고 있는 이들은 서울 명동성당 문화회관에서 열린 심장병 아동 돕기 콘서트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그 무대에 우연히 오르게 된 상진씨가 나중에 상수씨를 끌어들여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콘서트 무대에 서니 재미있었어요. 또 좋은 일을 하는 거니까 노래를 부르면서 뿌듯했고요. 그래서 상수에게 둘이서라도 그 일을 하자고 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수와진은 1987년 ‘새벽아침’으로 데뷔했고, 88년 ‘파초’가 방송 가요프로 ‘톱10’에 10개월 동안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거리공연은 거의 빼먹지 않았다.

“주말에 거리 공연을 하니 기획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줄어 못마땅했을 텐데도 우리가 계속하겠다고 고집해 끝내 말리지 못했지요. 크게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거리공연을 계속 했지요.”

위기도 있었다. 상진씨가 89년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사경을 헤맬 정도 큰 부상을 입으면서 그들에게 시련의 세월이 이어졌다. 상수씨는 솔로로 활동해야 했고, 이벤트 사업에도 손을 댔지만 쓴맛을 봐야 했다. 상진씨는 상태가 호전됐지만 가수활동을 접어야 했고, 이후 생계를 꾸려가는 일에 바빴다. 상진씨가 가끔 합류하기는 했지만 주로 상수씨 혼자 모금공연을 해야 했고 그마저도 거르는 날이 늘어났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은 멈추지 않았다.

2008년 둘은 극적으로 재결합해 5집 ‘다섯번째 이야기’를 발매하고 이듬해 예전처럼 매주 거리공연을 재개했다. 지난해 40여명(수술지원비 약 6000만원) 등 지금까지 수와진이 수술비를 지원해 새생명을 얻은 심장병 어린이 환자는 800명에 달한다.

수와진은 뭘 바라고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어린이 환자들을 돕는 게 기쁘고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언제인가 공연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부부가 찾아왔어요. 자기 아이가 우리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았고 그 덕에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며 울더군요. 어릴 때 수술을 받은 한 여성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며 꼭 집으로 찾아뵙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런 말을 들을 땐 정말 이 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요.”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