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입력 2011-02-14 18:58
본문: 요나 3장 6~10절
하나님은 한 번 뜻을 정했다가 그 뜻을 바꾸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아침저녁으로 그 마음과 뜻이 변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이 실제로 그 뜻을 바꾸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도 그중 하나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두 차원을 고려하지 않을 때 위와 같은 의문이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본래 의도하신 뜻과 그 후에 허용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차원 속에서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뜻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계획을 이루시고 경영하시고 간섭하십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패역했던 니느웨 성은 죄악에 빠졌던 처음 행태와 달리 왕에서부터 이름 없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거하는 놀라운 부흥을 체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니느웨 성 못지않게 하나님을 떠나 패역한 세상 풍조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원칙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세 가지 중요한 영적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적인 각성입니다. 우리가 심판과 재앙 대신에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과 구원의 축복을 경험하기 위해선 먼저 죄에 대한 지적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지적인 각성이 있을 때 회개의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자기 죄를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출발인데,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죄를 깨닫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둘째, 정서적인 참회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물 흘릴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역사하시면 나를 감동시키고 내 마음속의 죄를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파하고 후회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성령이 감동하실 때 가능합니다. 성령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이때 성령은 사람들 곁에 다가가시고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임하여 역사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낱낱이 보여주십니다. 그때 죄가 아프게 느껴져야 합니다. 그리고 엎드려야 합니다. 성령이 눈물을 흘리게 하면 울어야 합니다.
셋째, 의지적인 돌아섬입니다. 참된 회개는 인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지적인 반응과 정적인 반응과 의지적인 결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죄를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슬렀던 죄악의 습관과 죄악의 자리를 떠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은 결단이 요구되는 행동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는 겉으론 평화로워 보였지만 안으론 물질적 탐욕과 도덕적 죄악이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때입니다. 오히려 죄악을 탐닉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분은 회개하는 자에게 기꺼이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기꺼이 영적인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 가득한 죄악을 버리고 주님을 향하여 뜻을 돌이키면 니느웨 성 백성처럼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건일 목사(서울 북아현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