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저비용 DNA 해독기술 속속 개발… 개인별 ‘맞춤형 의약시대’

입력 2011-02-14 17:27


#1. 재미 과학자로 현 삼성서울병원 암연구소장인 백순명 박사가 개발의 핵심을 담당한 유방암 진단 시험키트 ‘OncotypeDX’는 개인 유전체(게놈:DNA로 구성된 유전 정보의 총합) 해독 정보를 실제 암 진단에 적용한 것이다. 이 키트는 초기 유방암 환자 조직에서 21개의 특이 유전자 발현을 검사함으로써 재발 가능성과 항암 치료의 효능을 정확하게 예측해 불필요한 치료를 막아 준다.

#2.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 소아병원은 선천성 시각장애인 어린이 5명과 어른 7명에게 유전자 치료제를 주입해 시력을 회복시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시각 장애인의 게놈을 분석해 이상 유전자를 확인하고 이를 대체할 유전자를 삽입해 손상된 망막과 시신경을 복구한 것이다.

위의 예시는 환자의 유전자형에 맞는 진단과 치료라는 이른바 ‘개인별 맞춤 의약’의 대표적 사례다. 게놈 정보는 생물체의 설계도와 같은 것으로, 진화 및 생로병사 같은 다양한 생명 현상의 원리가 담겨 있다. 특히 건강과 질병에 직결된 정보를 담고 있어 미래 의학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2003년 인간 게놈 지도 완성(1990년부터 13년간 진행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 이후 게놈 지도에 포함된 의미를 해석하기 위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다양성과 질병 원인은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런 변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시퀀싱(Sequencing:염기 서열 정보 해독)’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이중 나선 구조의 DNA는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라는 4개의 염기가 30억개의 쌍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이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 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과거 오랜 기간 막대한 돈을 들여 시퀀싱하던 방법과 달리 최근에는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유전체를 초고속, 초정밀, 저비용으로 읽어내고 이를 표준 유전체와 비교함으로써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1990∼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수행 당시 사용된 1세대 시퀀싱 방법은 한 사람의 유전체를 해독하고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데 13년간 총 27억 달러(약 3조원)가 들어갔다. 이후 2, 3세대 시퀀싱 장비 및 기술이 개발되면서 해독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비용은 줄어 2010년엔 개인당 1만 달러(1000만원) 수준, 시간은 1∼2주 정도로 단축됐다(그래픽 참조).

2007년부터 본격 도입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기술(NGS)은 실험의 간편성과 정확도, 제공하는 정보의 범위 등에서 훨씬 강력해 유전체 해독 비용과 시간 절감에 획기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근래엔 나노 기술(NT)을 접목한 4세대 시퀀싱 기술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활발하다. 최근 포스텍 화학과 김광수 교수팀은 첨단 나노 신소재인 ‘그래핀’을 활용해 30억쌍의 인간 DNA 염기서열을 단 1시간 안에 알 수 있는 혁신적인 해독 기술의 밑그림을 내놔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비용도 몇 만원 밖에 들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5년 정도면 실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의학연구센터장 염영일 박사는 “NT와 IT의 급속한 발전으로 앞으로 5년 내에 1000달러(100만원) 이내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가 걸리지 않아서 개인의 게놈 지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기존 슈퍼컴퓨터가 맡던 게놈 분석을 위한 데이터 처리를 노트북과 데스크톱이 대신하게 되면서 비용이 더욱 감소해 본격적인 ‘개인 게놈 해독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8월 내놓은 ‘개인 유전자 해독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와 신사업 기회’라는 보고서에서 “개인 게놈 해독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현실화됨에 따라 유전자 특성을 알기 위한 게놈 분석이 급속히 확산될 것이며 2015년 이후에는 질병 진료 뿐 아니라 유아 출생, 건강검진 시에도 게놈 분석이 필수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해독돼 공개된 개인 게놈 정보는 한국인 2명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10여명 이상에 이른다. 최근 발표된 미국, 영국, 중국 등 국제 공동 ‘1000게놈 프로젝트’는 올해 안에 2000여명의 개인 유전체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며, 국내에서도 서울대 서정선 교수를 비롯한 대학연구팀과 마크로젠, 테라젠이텍스 등 바이오기업들이 대규모 한국인 게놈 서열 확보를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염 박사는 “이런 노력의 결과로 앞으로 5년 안에 100만명 이상의 개인 유전체 정보가 공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