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88)

입력 2011-02-14 13:37

성경찬송 리모델링

‘찬송가공회 법인화 진짜 이유는 이권 다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연일 기독교계 신문에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그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 ‘이권’이란 다름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제적인 이권’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찬송가를 팔아서 생기는 수입을 말하는 것일 테다.

이런 곱지 않은 인식을 갖던 차에 ‘21세기 찬송가’라는 게 새롭게 나왔다. 누가 바꿔라 마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되면 강요를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대중 집회에선 그 ‘이권’에 가까운 종교기득권자들이 집회를 주재할 테고, 그러면 영락없이 그들은 그들이 만든 새 찬송가를 쓸 게 아닌가? 그러면 군중이야 울며 겨자 먹는다는 식으로 그동안 사용하던 성경찬송가 합본을 버리고 새로 나온 것들로 바꿀 수밖에 별 도리가 있을까? 한 쪽에선 돈이 드는 일이고, 다른 한 쪽에선 돈이 되는 일이다.

돈 주고 새로 사면 그만이지 무슨 까탈일까 하지만, 시골교회의 소박하고 가난하고 나이든 교우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권’에 가까이 있는 윗 양반들 주머니를 채워주는 거 같아서도 싫고, 그것 땜에 싸움질한다는 게 싫고, 그렇지 않아도 예배당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게 성경찬송인데 또 사야 하나, 해서 차일피일 교회적으로 찬송가 바꾸는 일을 미루고 지내왔다. 그런데 차츰 무언의 압력에 굴복당한 교우들이 삐끔삐끔 새 찬송가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더니 금년 초부터는 가끔 “우리는 언제 새 찬송가로 바꿔요? 예배 시간에 혼란이 생겨요”하는 게 아닌가?

몇 날 새벽 묵상 때마다 궁리를 거듭하는데 묘안이 떠올랐다. 가장 싼 보급판을 사다가 기존의 성경찬송가에 있는 묵은 찬송가를 떼어내고 새 찬송가를 붙여 보자는 것이었다. 그 날 오전에 우선 내 것을 먼저 해 보았다. 약간 크기의 층하가 생기기는 하지만 멀쩡하다. 이거다 싶어 주일에 광고를 했더니 우선 30여명의 교우들이 성경책을 두고 갔다. 내게 헌 찬송가를 떼어내고 새 찬송가를 붙여 달라는 교우들의 대다수는 645곡의 찬송을 다 불러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실 분들이다.

밤늦게까지 칼로 자르고 떼어내고 했다. 오래되어서 가죽이 삭아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분들에겐 이게 마지막이다’ 싶으니 마음이 따사롭다. 성경과 찬송을 무조건 새 걸로 사지 말고 이렇게 리모델링(remodeling)을 해보니 흔치 않은 기쁨이 봄바람처럼 일어난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