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거부’ 손학규 대표, MB를 ‘귀하’라 칭하며 “일말 기대도 접었다” 직격탄
입력 2011-02-13 19:09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13일 영수회담 거부를 선언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작심하고 날을 세웠다. 이 대통령을 ‘독재자’ ‘귀하’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민주주의를 다시 공부하라” “일말의 기대조차 접었다”는 극단적 표현도 동원했다.
손 대표는 국회 긴급 기자회견을 “지난주 또 한 명의 독재자가 물러났다. 지도자의 오만과 탐욕은 항상 국민의 함성에 무너졌다”는 말로 시작했다. 민중 시위로 퇴진하게 된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이 대통령을 빗댄 것이다. 손 대표는 구제역 창궐, 전셋값 폭등, 물가 불안 등을 예로 든 뒤 “국민의 원망이 가축들의 핏물처럼 온 나라 시내와 강에 넘친다”고 목청을 높였다. 손 대표는 또 “민주주의를 다시 공부하라”며 “민심이 흉흉해지고 이명박 정권이 실패로 끝나 가면 귀하가 믿던 여당도 검찰도 언론도 돌아설 것을 모르느냐”고 말했다.
손 대표는 청와대가 향후 영수회담을 어떤 식으로 제안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청와대가 민주당 등원을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등 영수회담에 사실상 의지가 없는 것으로 그는 판단하고 있다. 특히 연 사흘째 청와대 측에서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은 데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대표 측에 따르면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양승조 당 대표비서실장에게 마지막으로 연락해 온 건 지난 10일이다. 당시 정 수석은 “임시국회가 정상적으로 열린 다음에 영수회담을 하자”고 요구했고, 양 실장은 “손 대표가 대통령에게 국민 목소리를 전달해야 임시국회에 반영될 것 아니냐”고 거부했다. 이에 정 수석이 “청와대 내부적으로 협의해서 연락 주겠다”고 했는데,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손 대표가 ‘영수회담 거부-조건 없는 등원’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선택한 것은 청와대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산적한 민생현안을 거부할 경우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영수회담 무산의 근본적인 책임은 민주당의 ‘정략적 의도’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은 대화하려고 했으나 민주당이 국회 등원, 사과 등 여러 조건을 거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논리다. 정 수석은 “청와대 회동은 회동대로 해야지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서 하면 안 된다”며 “(손 대표가) 논의의 진전을 스스로 가로막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첫 브리핑에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표현이 과하다는 내부 지적에 따라 수정 브리핑을 내놓기도 했다.
양측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지난 1일 이 대통령의 신년 방송좌담회 언급에서 비롯된 여야 영수회담은 백지화로 결론 났다. 이 대통령과 손 대표 모두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 따른 부담감으로 회담 문제를 재고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협상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여서 당분간은 재론이 어려울 전망이다.
김호경 남도영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