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비트는 정부… 울며 ‘겨자’ 먹는 금융권

입력 2011-02-13 20:33


“정부가 하라는데 어쩌겠어요. 저축은행 인수도 일단 신청서만 내고 보는 지주사도 있을 겁니다.”

지난달 삼화저축은행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3개 금융지주사를 두고 한 은행권 임원이 최근 푸념을 늘어놨다.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성화 아래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민금융상품 출시부터 시작된 금융당국의 압박이 최근 인사 시즌과 맞물리면서 더욱 강도가 세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민금융은 물론 체크·직불카드 활성화, 녹색금융 및 일자리 확대 등 좋은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수익성에 대한 고민 없이 ‘불도저’ 식으로 압박에 나서는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금융권에 높아지고 있다.

◇고민에 빠진 카드업계=체크카드 수수료 인하를 두고 카드업계가 고심하고 있다. 정부가 서민경제 안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직불카드 수수료는 1.5%, 체크카드는 1.85%로 0%대에 진입한 선진국에 비해 배 이상 높다. 반면 체크카드 매출액은 2004년 2조6280억원에서 2009년 36조4920억원으로 5년 사이 무려 15배 가까이 늘어났다. 사실상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카드업계는 정부가 지나치게 수수료 인하를 강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미 다음 달부터 수수료율을 중소가맹점은 2%에서 1%로, 일반가맹점도 1%대 후반으로 하향키로 했음에도 지속적으로 인하 압력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원하니 (인하)하긴 해야겠지만 전업카드사의 경우 수익성이 더 악화되면 체크카드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다”면서 “업계와의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상명하복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팔 비틀기 식은 그만했으면…”=지난해 은행권은 희망홀씨대출 등의 서민금융상품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사실상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금융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금융기관이 떠맡다시피 하다보니 부실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희망홀씨대출은 정부가 보증하는 보증부대출은 일찌감치 마감되고 사실상 은행이 대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순수 신용대출만 장기간 운영돼 왔다.

여기에 부실 저축은행 문제까지도 금융지주사가 인수토록 유도하자 은행권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서민대출이든 부실저축은행 문제든 정부가 협조를 요청하니 지원하긴 하지만 솔직히 숨이 찬다”며 “최근 금융당국 수장들이 교체되면서 더욱 팔 비틀기 식 요구가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정부의 직·간접적인 압박에 떠밀려 만든 상품 중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사례도 나타난다. 그중 하나가 녹색금융상품이다. 오죽하면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마저 녹색금융상품 개발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있을 정도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보다는 우리가 좀 더 나은 입장이긴 하나 관련 지원 제도 등을 만들기 위해 어려움이 있다”고 귀띔했다.

김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