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민혁명 빛나다] 타흐리르 광장, 민주화 성지로 우뚝

입력 2011-02-13 18:39

이집트 수도 카이로 중심의 타흐리르 광장이 이집트 민주화 성지로 우뚝 섰다. 광장은 한동안 더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시위대가 국민의 요구 조건이 실천에 옮겨질 때까지 광장에 남아 계속 투쟁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타흐리르 광장이 반정부 시위의 중심이 된 건 수천명의 천막 농성자들 덕분이다. 카이로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농성자들은 반정부 시위 18일간 광장을 떠나지 않아 집회 장소를 선점하는 효과를 냈다. 천막이라지만 목재들을 엮고 비닐을 덮은 뒤 바닥에 담요를 깐 게 대부분이었다. 생활의 불편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시민들은 날이 밝고 통금이 해제되면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 치료를 위한 임시 진료소가 가동됐다. 시위대를 하객 삼아 결혼식도 이뤄졌다. 경찰·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도 곳곳에 내걸렸다. 도시 빈민층에서부터 화이트칼라 계층까지 광장에 모여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타흐리르 광장은 애초 왕의 이름을 딴 ‘이스마일리아 광장’이었으나, 가말 압델 나세르(1918∼70) 전 대통령이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고 집권하면서 해방을 뜻하는 ‘Tahrir’로 이름을 바꿨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한 이튿날인 12일(현지시간) 광장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천막이 크게 줄었다. 집에 돌아간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20대 청년들은 긴 빗자루와 검정색 쓰레기봉투를 들고 광장 곳곳을 청소했다.

가족 단위의 광장 방문자들도 상당수였고,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출입통로를 지키던 군인은 방호복을 벗고 총을 내려놨다. 탱크는 아직 그대로다. 광장 방문자에 대한 몸수색은 사라졌다.

대학 졸업 뒤 9년째 정규직 일자리를 찾고 있는 아흐메드 압둘라 모하메드(27)는 “요구 조건 중 많은 것들이 ‘약속’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서 “비상조치법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에 관한 구체적 조치가 나와야 광장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천막 농성자 중 상당수가 모하메드와 같은 생각이어서 시위는 장기화할 수도 있다.

카이로=권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