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혁명 현장 지켜본 한국 ‘민주화둥이’들… “하루벌이 시민들 용기에 감동”

입력 2011-02-13 18:29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없었다면 이집트 시민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중동 국가들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민주화 운동을 쉽게 막지 못할 겁니다.”

11일(현지시간) 밤 이집트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혁명의 감동을 이집트인과 함께 느낀 한국인 유학생들이 있다. 아랍어 연수를 위해 카이로에 거주하고 있는 한새롬(25)·나한솔(25)씨가 이들이다.

둘 다 1986년생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이 최고조(1987년)에 이를 무렵에 태어났다. 이들에게 이집트 시민혁명은 신기하면서도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한씨는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시위를 안 하고 일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잖아요. 희생을 감수하면서 미래를 선택했던 그들의 용기에 감탄했어요”라고 털어놨다.

나씨는 반정부 시위 초반 폭력사태가 일어났을 때 현장에서 디지털카메라에 상황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앞서서였다. “최루탄 냄새는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을 받았을 때 빼고는 처음 맡아보는 것이었어요. 1980년대 우리나라가 이와 비슷했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이룩한 한국의 민주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나씨는 “한국에선 자유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우리도 이집트처럼 많은 희생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고 말했다. 한씨는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시민정신을 타흐리르 광장에서 실제 목격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페이스북 이용자이고, 페이스북 상에 이집트인 친구가 있다. 나씨는 “11일 밤 이집트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글을 엄청 올리더라고요.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라고 귀띔했다.

취재진을 제외하면 타흐리르 광장 현장에서 이집트 시민혁명을 목격한 한국인은 두 사람뿐이다. ‘용감한 선택’이 둘에게 역사 현장을 목격하는 행운을 안겨줬다. 한씨는 지난 10일 홀로 카이로 입국을 감행했다. 다른 교민과 유학생이 앞다퉈 카이로를 떠나려 할 때였다. “중동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나씨는 아랍어 공부를 늦출 수 없다는 마음에 카이로에 남기로 결정했다. 카이로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은 50∼60명으로, 대부분 지난달 말 도시를 빠져나갔다.

한씨는 지난해 숙명여대 경영·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에서 중동 정치를 공부할 생각이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휴학 중인 나씨는 중동지역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카이로=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