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공정영화 인증제

입력 2011-02-13 18:03

영화 포스터나 예고편에 ‘이 영화는 제작진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였습니다’라는 문구를 넣도록 하면 어떨까. 영화산업노동조합 같은 단체의 인증을 받은 영화만 이런 문구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정무역 커피처럼.

이렇게 인증 받은 영화에 대해선 영화발전기금에서 제작진의 고용보험료를 지원한다거나 하는 혜택을 줄 수도 있겠다.

영화판을 안다는 분들은 이런 아이디어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영화가 다 만들어져 개봉한 뒤에도 한참이 지나야 임금을 지불하는 사례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정당한 임금을 지급할 예정입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한국 영화인들은 어쩌면 킬리만자로 산속에서 공정무역 인증 커피를 재배하는 사람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셈이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는 140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다. 영화산업노조에 임금체불로 신고된 건수는 지난해에만 43건이다. 여기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도 포함돼 있고, 2009년 이전에 개봉한 영화도 들어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중에 임금체불이 아직 신고되지 않은 영화도 있을 것이다. 약간 무리해서 일반화한다면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영화가 임금체불 상태인 셈이다.

영화산업노조가 지난해 말 한국영화 103편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한 결과로는 14.5%에 해당하는 15편이 임금체불 상태였다. 설문조사에 응한 곳만 대상으로 해 그나마 나은 수치가 나왔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업 중에 이렇게 임금체불이 일상화된 분야가 또 있을까?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독자들은 알 것이다. 지난 설 최고은이라는 젊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원룸에서 쓸쓸하게 죽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어떤 분은 이 모든 것이 “작가, 가수, 백혈병 걸린 반도체 공장 노동자, 정리해고 대상이 된 조선소 직원들 소식을 외면하는 기자들” 때문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맞다.

스타급 배우나 감독들이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좋겠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애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덕분에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영화 한 편에 수억원의 출연료나 감독료를 받는 이들이 좀 더 공개적으로 움직여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라는 꿈을 먹고 사는 제2, 제3의 최고은을 위해서라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