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유머·풍자 들고… ‘연출가 장진’의 귀환

입력 2011-02-13 17:14


8년만에 쓴 희곡 ‘로미오 지구 착륙기’ 무대 올려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연극 연출가 등 다양한 활동을, 그것도 눈에 띄게 해내는 팔방미인 장진(40) 감독이 오랜 만에 연극 연출가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창작극 동아리 ‘만남과 시도’ 30주년 기념 공연인 ‘로미오 지구 착륙기’의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연극 연출은 ‘서툰 사람들’ 이후 5년 만이고, 연극 극본을 쓴 것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8년 만이다.

지난 11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난 장 감독은 “별로 의식하진 않았는데 시간이 그렇게 갔다”고 오랜만의 친정 복귀 소감을 담담하게 말했다. 영화 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연극을 떠난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미오 지구 착륙기’는 그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풀어낸 것이다. 재개발을 앞둔 달동네에 느닷없이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떨어진다. 전 세계가 UFO의 출현에 호들갑이지만 정작 달동네 사람들은 재개발이 미뤄져 집값이 떨어진다며 대책 마련에 들어간다. 장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와 풍자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는 “세상이 희망을 주지 못하면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삶이 힘들어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 세상에는 없는 존재인 UFO가 등장하면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 감독은 여기서 이야기를 한 번 더 비튼다. UFO는 희망이 아니다. 재개발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직전인 달동네 사람들에게 UFO는 그 꿈에 제동을 거는 딴지가 된다. 작품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반응하는 서민들과 대척점에 있는 정부 관료들이 엮이면서 현실을 풍자한다.

하지만 그는 “메시지는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바뀐 세상에 대한 그의 대응 방식이다.

“할 말을 못 하던 시절에는 연극에서 선동하고 구호를 외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운동할 게 있으면 거리로 가서 피켓 들면 돼요. 이 작품에서도 대통령을 산산조각 내지만 풍자에 그치지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닙니다.”

‘웰컴 투 동막골’ ‘택시 드리벌’ ‘박수칠 때 떠나라’ 등 장 감독은 자신만의 연극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다. 그는 “진득하게 대학로에 자리 깔고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연극해서 집 사고 건물 샀다는 사람도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매체에서 스타를 캐스팅해 와 돈을 버는 졸속함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무대를 지켜 온 배우들에게 자괴감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름 값으로 티켓 바꾸는 사람을 데리고 오지 않고도 관객을 채울 수 있어요. 훌륭한 연극만으로 극장을 6개월 채운 경험은 이미 해본 겁니다.” 그는 자신했다. 자신감의 근거는 극본이다. 자신이 쓴 극본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연극 ‘로미오 지구 착륙기’는 16일부터 20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02-2263-4680).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