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2-13 17:23
(33)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던 시절,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은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자신을 지성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어느 날 그래도 한 번은 성경을 읽어보고서 반대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처음 성경을 읽는 것이니까 무슨 깊은 이해나 해석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용히 충격이 다가왔다. 그저 일독하는 데도 분명하게 느껴져 오는 몇 가지가 있었다. 성경이 참 진지하고, 무언가 일관된 얘기를 하고 있고, 아주 분명하게 그러나 차분하게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반감의 이유와 내용을 오히려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랬고 예수의 사건이 그랬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당시 신앙인들을 무섭게 책망하면서 예배를 상대화시킨다. 삶의 실천이 따르지 않는 예배, 그저 종교 형식으로 전락한 예배 말이다. 지금도 기억난다. 이사야 선지자가 아주 출중한 사람이라는 걸 신학자 선배한테 듣고서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더 집중했다. 1장을 읽으면서 충격이 컸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신앙인들을 얼마나 강하게 책망하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삶이 없는 예배를 아예 그만두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안식일도 역겨워하신다. 안식일은 오늘날도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주일성수 아닌가! 차라리 성전에 오지 말라고 한다. 헌금과 예물도 가증하다고 한다.
이사야 1장 11∼13절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신앙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닮는 것일 텐데, 신앙이 타락하면 오히려 얼마나 더 ‘인간적’이 되는지! 그때 성경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적대적이었던 니체의 책 제목이 생각났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878년에 출간된 것인데, 니체가 볼테르 생몰 100주기를 기념하면서 헌정한 책이다.
마가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길에서 조용하고 잔잔한데도 아주 또렷하고 강하게 느껴져 오는 게 예수의 진실함이다. 예수님은 참 ‘진실하시다.’ 예수님의 자의식은, 그래서 그분의 삶과 일은 하나님과 참 깊게 이어져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을 닮아 신적이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분은 참으로 따뜻하고 소박하고 진실하게 인간적이셨다. 어느 서기관과 예수님의 대화 한 토막이 그걸 잘 보여준다. 마가복음 12장 28절 이하의 내용이다. 서기관이 가장 큰 계명을 묻는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답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맺으신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얼마나 놀랍게 신적인가! 얼마나 따뜻하게 인간적인가! 신학자 선배의 삶이 생각났다. 내가 걸어가야 할 신앙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