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 85세 선교사 최찬영 목사 “선교는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는 것”
입력 2011-02-13 17:23
1955년 4월 장로교단 첫 선교사로 임명된 최찬영 목사가 85세에도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미국 LA 또감사선교교회 파송 선교사, GEDAI(Global Evangelical Development Association International) 국제대표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56년 5월 태국 선교사로 한국을 떠난 그는 1년3개월여 전, 54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부산 해운대에서 거주하며 몽골 중국 태국 등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GEDAI 소속 선교사들을 돌보고 있다.
최 선교사는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갖고 있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태국과 라오스 성서공회 총무를 역임했다. 78년부터 92년 은퇴할 때 까지 역시 최초로 성서공회 아시아태평양지역 총무로 봉사했다. 중국 애덕기금회를 통해 난징에 성경인쇄공장을 설립, 중국어 및 소수민족 언어로 성경이 발행되도록 도왔다.
그에게 선교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선교는 크리스천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남을 위해 살아야 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교는 선교사만을 위한 과제가 아니라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이다.
최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골드 미셔너리(선교사)’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버 미션’은 은퇴한 사람들이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죠. 단순히 마지막 생을 불태우기 위해 선교지로 떠나는 게 아닙니다. 사역의 전문성과 생활의 자립기반을 갖춘 이들이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영원히 드린다는 의미에서 실버라는 용어보다 골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그 자신 ‘골드 미셔너리’를 앞서 실천했다. 92년 은퇴 후 5년간 미국의 명문 풀러신학교에서 연봉 1달러 교수로 후학을 길러냈다. “교수 초빙 계약을 하자고 했을 때 월급이 필요치 않다고 했어요.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서류상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해 1년에 1달러 받는 걸로 했었습니다.” 무욕의 선교정신은 또감사선교교회 선교사가 될 때도 빛을 발했다. 매월 일정한 선교비 지원에 대한 제안을 거절했던 것.
최 선교사는 “교회가 한 선교사를 파송한다고 가정할 때 선교사 노후문제까지 고려해 지속가능한 후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선교사가 하나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모자라게도 하지 않는 하나님의 재정공급 원칙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교회가 선교사 파송의 양적 성장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목회 일선에서 낙방한 사람이 선교사로 나간다는 얘기가 들려요.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을 보세요. 우리는 선교사의 상을 예수님에서 찾아야 합니다.”
최 선교사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가는 것, 섬김을 받아야 할 자가 섬기러 가는 것이 곧 선교라며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선교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선교사와 현지인과의 관계를 세례 요한을 들어 설명했다. “‘그는 흥해야 하겠으나 나는 쇠해야 하리라’는 요한의 고백처럼 선교지의 모든 사람들을 철저하게 섬겨야 합니다. 선교가 선교사 개인이나 파송국가의 자랑거리가 되면 안 됩니다. 선교의 참된 성과를 하나님이 분명히 계산하고 있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최 선교사는 개신교 첫 중국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과 영화(英華)서원을 예로 들어 부연 설명했다. “모리슨 선교사는 중국 본토에서의 선교가 불가능해지자 말라카에서 중국인 인재양성을 위해 영화서원을 세웠어요. 만일 화영(華英)서원으로 이름을 지었으면 어땠을까요. 이름 하나 지을 때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중국 복음화는 외부인이 아닌 중국인의 손으로 이뤄야 했죠. 그에 대한 존중을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최 선교사는 예수님의 사랑과 모범을 따라 스스로 종이 되는 게 곧 선교지 사람들과의 첫 접촉점이자 종착점임을 강조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