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이집트] 버럭 화낸 오바마… 초강경 압박 ‘선긋기’
입력 2011-02-11 18:19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화났다. 빠른 이집트 안정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 데 대한 실망감이 큰 모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오후(현지시간) 미시간주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에어포스원 안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對)국민연설을 지켜봤다. 그리고 도착한 뒤 바로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뒤엔 오바마 대통령 명의의 강경한 성명이 나왔다. 무바라크가 연설한 지 수시간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집트 정부가 국민에게 정권 이양을 약속했지만 얼마나 즉각적이고 의미 있는지, 또 충분할지 명확하지가 않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과 국제사회에 명확한 정권 이양 계획을 밝히는 게 이집트 정부의 의무”라고 단언하고, 구체적으로 신뢰할 만한 민주화 계획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집트 정부에 시위대를 탄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이집트 국민들은 지금까지 진행돼 왔던 것에서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 왔다”며 “이집트는 변화하고 있고, 장래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무바라크 대통령과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우리가 누구의 편인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성명 내용은 지금까지 이집트 사태와 관련된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 중 어조가 가장 강경했다. 미국이 무바라크 대통령과는 확실히 선을 긋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특히 무바라크 대통령이 “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미국이 강하게 요구했던 비상계엄령 해제를 거부한 게 백악관 안보팀의 등을 돌리게 한 요인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고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양측이 등을 돌렸다는 건 이집트 사태가 점점 더 미국의 통제 밖으로 벗어난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면 할수록 중동 지역에서의 국가안보 이익은 그만큼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현재 이집트 상황이 혼란스럽게 진행됨에 따라 미국이 바라는 ‘질서 있는 전환’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불투명해졌다.
그래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자신의 퇴진 거부에 반발해 더욱 격화되는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할 경우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사태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