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었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입력 2011-02-11 17:22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은 청소년들의 불안정함과 미숙함에 대한 영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하는 제목이 눈길을 끌지만, ‘호밀밭…’의 주인공 홀든이 언급한 적 있는 ‘절벽으로 마구 달리는 아이들을 지켜줄 파수꾼’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이나 상처받기 쉽고 예민한 아이들의 심리와 관계에 대해 그렸다.

영화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조성하)의 시각에서 시작한다. 결론은 처음부터 나와 있다. 아들이 죽었다. 아들의 생활이 어땠는지 알기는커녕 깊이 있는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아버지에겐 별안간 닥친 불행이다. 그는 회한 속에 아들의 친구들을 만나며 뒤늦게 생전의 아들과 대면한다.

아들의 친구들은 그를 ‘아버님’이라고 깍듯이 부르며 묻는 말에 선선히 대답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숨기는 듯하다. 아들이 죽기 전 아들과 제일 친한 친구 두 명이 전학가거나 학교를 그만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 세 아이의 관계도 서서히 드러난다.

영화가 담아낸 건 오로지 아이들의 세계. 어른들은 아무도 여기에 끼어들지 않는다. 선생님은 문학작품을 읽으며 ‘시험에 나오니 잘 알아두라’고 말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만 존재하고, 아버지는 아이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친구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 그러니 교실은 세상과는 단절된 아이들만의 공간이다. 진심을 담은 언어로 소통해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욕설과 상처, 폭력을 주고받는 가운데 타인과의 관계를 배운다. 주인공을 맡은 세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유리조각 같은 아이들의 세계를 드러나 보이게 한다.

순수한 건 쉽게 물들고, 예민한 건 깨어지기 쉬운 법. 세 아이 희준(박정민)·기태(이제훈)·동윤(서준영)은 사소한 오해와 비뚤어진 자존심이 우정에 금을 내는 모습을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작은 균열이 파국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의 상처에 아파하는 만큼이나 남의 상처에 무심한 아이들. 누구나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겪을 수 있지만, 고통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세상엔 나밖에 없다’는 외로움일 것이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기태는 친구를 잃고 죽음을 택한다. 남은 희준과 동윤도 무거운 상처를 안은 채 자신의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아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만큼이나 어른들의 공백을 아프게 집어낸 연출이 눈에 띈다. 닫혀 있는 아이들의 세계를 외부인(아버지)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설정도 영리하다.

죽은 아이만큼이나 살아남은 자들도 혼자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아이들을 지켜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에, ‘파수꾼’이라는 제목은 처절한 역설이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뒤늦게 소통하는 인간들을 그린 방식도 인상적이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수상작이며 제4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진출작이다.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는 세간의 찬사도 납득이 간다. 15세가. 다음달 3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