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개근상
입력 2011-02-10 18:43
고2 때까지 난 결석 한 번 안 했다. 사단이 난 것은 고3 5월의 어느 날. 학교 야구부가 26년 만에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 게 화근이었다. 준결승이 끝나자 친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열리는 결승전 응원을 위해 동대문운동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리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야간열차를 탔다. 입시 압박에 시달리던 고3의 치기였을까. 그렇게 해서 도착한 서울은 아침부터 비가 뿌렸다. 그날 열린다던 결승전도 비 때문에 순연. 하는 수 없이 잠자리를 찾아 서울로 시집와 사는 누님을 찾았으나….
아뿔싸. 미리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누님은 회유와 압력을 거듭했고 까까머리 고3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떼밀리다시피 고속버스에 태워졌다. 결승전은 다음 날 TV에서 봐야 했다. 지금도 친구들이 놀림감으로 삼는 이유다.
결석 하루. 전 학년 우등상은 몰라도 개근상은 늘 받았는데 그마저도 날렸으니. 그리고 그해 입시는 실패로 끝났다. 아쉽고도 부끄러운 추억이다.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더라면 개근상이 그렇게 아쉽지도 않았을 텐데. 끝까지 뻗대지 못한 것은 더욱 그렇고.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개근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에 문득 36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부터 개근상 자체를 아예 없애는 초등학교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가족끼리의 현장체험학습이나 경조사 참여 등은 간단한 보고서만 내면 출석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등교 없는 출석이 일반화되다 보니 개근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개근상 실종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공교육 폄하의 또 다른 행태는 아닌지 모르겠다. 방학이 시작될 즈음이면 단기영어연수를 떠난 학생들 때문에 교실이 텅텅 비기 시작한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는가.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는 전설 같은 관련 기록이 참 많다. 하지만 딱 하나 미국 기록이 일본에 못 미치는 게 있다. 바로 1987년 6월 3일 기누가사 사치오(衣笠祥雄)가 달성한 2131경기 연속출장기록이다. 이전까지는 20∼30년대 뉴욕 양키스의 간판타자 루 게릭의 2130경기가 최고였다.
미국 야구팬들이 기누가사 선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의 기록에는 범접할 수 없는 성실성과 강한 집념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학교와 가정이 교육현장을 함께 관리하는 풍토는 바람직하지만 개근상 실종은 왠지 섭섭한 생각이 든다. 오래전 아픈 기억 때문일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