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어디로 가나] 통금·경찰·광장 통제, 사실상 무용지물

입력 2011-02-10 21:36

이집트 정부의 정국 장악 능력이 점차 한계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내린 야간(오후 8시∼오전 6시) 통행금지 명령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반정부 시위의 중심 타흐리르 광장 출입 제한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거의 모든 업무에서 손을 놓은 상황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오후 10시 카이로 도키역 근처 시장에선 불을 켜고 영업하는 상점이 여럿 보였다. 남성 여러 명이 노천 주점에 앉아 있고, 과일가게 주인도 손님을 기다렸다. 오후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임에도 어린이들까지 거리를 돌아다녔다.

9일 오후 7시쯤 카이로 시내에서 서쪽 약 13㎞ 떨어진 기자지구 피라미드 유적지. 관람 시간은 오후 4시까지이지만 호객꾼은 “뒷문으로 가면 24시간 관람이 가능하다”며 여행객의 팔을 끌었다. 호객군은 “시위로 돈을 못 벌고 있는데 통금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카이로 마디 지역에서 한국 마켓을 운영하는 조찬호 사장은 “주택가는 통금을 잘 지키고 있지만 시내는 통금시간 이후라도 예전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타흐리르 광장 출입 제한도 허점이 많다. 이집트군은 광장 출입로마다 탱크 여러 대를 세워놓고 광장 진입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신분증이 있는지 여부만 확인하는 수준이다. 오히려 시민 스스로 구성한 자경대가 흉기 등 위험 물질 반입 여부를 더 꼼꼼히 조사한다. 광장 동쪽에는 눈치만 잘 보면 신원 확인 절차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개구멍’도 있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대규모 유혈사태 뒤 시민의 신망을 완전히 잃었다. 특히 시위 직후 경찰이 자취를 감추면서 도시 전체가 약탈의 공포에 떨었던 일이 신뢰 추락에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치안을 군이 맡고 있어 카이로 경찰은 교통 체증 때만 가끔 모습을 나타낸다. 이 마저 제대로 하지 않아 시민의 원성이 높다. 택시기사 아흐메드 야세인은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도 팔짱만 끼고 있을 사람들”이라며 경찰을 맹비난했다.

카이로=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