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쥐눈이콩과 눈 맞추기

입력 2011-02-10 18:02


이듬해 심을 씨앗을 고르는 일은 겨울에 하는 게 맞다. 농작물 갈무리가 끝나고 메주까지 쑤고 나면 갑자기 한가해진다. 언제 그렇게 바빴나 싶고, 이래도 되나 싶게 할 일이 없다. 작업복에 붙은 도깨비바늘 뗄 짬도 없이 종종걸음 칠 때는 푹 쉬어 보는 게 원이지만 사나흘만 쉬면 좀이 쑤신다. 무엇보다 손이 심심해 못 견딘다. 부지런히 따고 캐고 다듬으며 재빠름에 길들여진 손이 안달을 한다. 이때 씨앗 고르기는 썩 괜찮은 일거리다.

내 추억 속 겨울 풍경에도 씨앗 고르기가 들어 있다. 그 일은 할머니 몫이었다. 할머니는 소반 가득 콩을 쏟아놓고 벌레 먹은 걸 골라냈다. 씨를 고르는 일은 중요해서, 곧잘 일손을 거들던 나도 옆에서 구경만 했다. 할머니는 못 쓰는 콩을 집어내지 않고 끌어당겼다. 검지로 누른 채 끌어당겨 소반 밑으로 떨어뜨리는 식이었다.

소반 밑에는 바가지가 있어 못난 콩을 받아냈다. 다 고르면 똘똘한 콩은 자루에 담고 소반을 다시 콩으로 채웠다. 바가지에 못난 콩이 쌓이는 만큼 자루도 차오르고, 겨울밤은 깊어갔다. 소반에 짜르륵, 콩 쏟는 소리, 바가지에 톡톡 콩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나도 할머니 흉내를 내 본다. 소반을 꺼내고 바가지도 준비한다. 그런데 할머니만큼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 같다. 눈이 어둡거나 손끝이 무뎌서가 아니다. 문제는 콩의 품질에 있다. 할머니의 콩은 똘똘한 것과 못난 것으로 나누면 됐는데 내 콩은 좀 복잡하다. 똘똘하다 싶으면 덜 똘똘한 게 보이고, 못난 중에 더 못난 게 있다. 키질이 서툴러 가려내지 못한 돌도 섞여 있다. 그러다보니 바가지가 몇 개 더 필요하다.

콩은 결국 세 등급으로 나뉜다. 모양이 온전하고 빛깔이 밝은 것은 일등품, 그중 알이 더 긁은 것은 특등품이다. 나머지는 이등품으로 치고, 벌레가 너무 먹었거나 곰팡이가 핀 것은 등외품이다. 등급에 따라 당연히 쓰임이 다르다. 특등품은 씨앗으로 남기고 일등품은 메주를 쑤거나 친구들에게 선물로 준다. 이등품은 집에 두고 먹는다.

아주 좋은 것은 아까워 못 먹는다. 마음 편히 먹기에는 이등급 콩이 알맞다. 주로 콩자반이나 두유를 만든다. 등외품은 옛날 같으면 여물 솥에 넣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음식물쓰레기통에 넣는다. 음식물쓰레기가 동물의 사료로 쓰인다니 다행이다. 그냥 버리는 게 아니다. 등외품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웬만하면 쓰레기통에 넣고 싶지 않다. 콩도 정이 드는가, 자꾸 보면 미운 놈이 없다. 고르느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콩하고 눈을 맞추는 기분이다. 쥐눈이콩이 특히 그렇다.

쥐 눈만큼 작고 쥐 눈처럼 반짝이는 고것, 다른 콩들이 가뭄과 병충해에 시들거려도 힘차게 덩굴을 뻗고 열매를 맺는 그것들하고는 아무리 눈을 맞춰도 싫지 않다.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 애틋한 눈맞춤에 겨울밤이 짧다.

이화련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