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적 기업, 이게 최선입니까?”… ‘사회적 영웅의 탄생’

입력 2011-02-10 17:45


사회적 영웅의 탄생/박명준/이매진

독일의 여성 기업가 산드라 쉬어만은 학교를 자퇴한 경험이 있다. 주변에서 “학교를 관두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 말렸지만 그녀는 “수업이 지루한데 내가 왜 거기에 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일자리를 얻고도 그녀는 실망했다. 학교도 일터도 그녀를 매료시키지 못했다. 쉬어만은 청소년들에게 강한 동기를 줄 때만이 직업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자신이 직접 나섰다. 그녀는 2005년 ‘프로젝트 공장’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18∼25살 백수들에게 연극무대에 서게 하며 용기와 희망을 북돋았다. 청년들은 총 10개월의 과정 중 처음 5개월 동안 연극수업을 받고 무대에 선 뒤 나머지 기간에는 직업교육을 받았다. 프로젝트 공장은 2009년까지 최근 3년간 63차례 공연했는데 누적관객수가 2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호평을 얻었다.

현재 6개 연방주에 26개의 활동기지를 둘 정도로 성공을 거둔 프로젝트 공장은 취업에 실패해 좌절했던 청년들에게 자긍심과 패기를 되찾아주었다. 2009년 여름까지 1650명의 참가자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550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이 취업률은 다른 사회적 프로젝트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요즘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공정 열풍’과 더불어 이른바 ‘뜨는 개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은 대중적인 용어가 됐고 관련 책과 논문들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는 2008년 사회적 기업법까지 제정돼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사회적 영웅의 탄생’(이매진)은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적 기업가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진정한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나아가 한국형 사회적 기업이 다양한 사회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책은 독일 쾰른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유럽과 한국을 비교론적 관점에서 연구해온 박명준(40)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과 연구원이 2009년 9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머리를 맞대고 기획했다. 박 연구원은 독일의 사회적 기업가 14명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사회적 기업가란 누구인지 물었다.

저자가 만난 사회적 기업가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했던 모순과 차별을 극복하고 이를 화두로 삼아 사회적 영역에 뛰어들었다. 비행 청소년들에게 권투처럼 몸으로 하는 운동을 통해 노동의 참뜻을 일깨워주는 ‘한트-인’의 대표인 루퍼트 보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한트-인을 설립한 보스는 어린 시절 두 형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다운증후군을 앓던 큰형,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은 뒤 13∼14세 때 약물 중독에 빠진 작은 형. 큰형은 13세에, 작은 형은 16세에 숨졌다. 두 형이 세상을 떠나면서 보스는 남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문제가 있는 누군가를 나중에 고치는 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생생히 느꼈다. 그런 자각은 보스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가로 활동하는 데 중요한 동기가 됐다.”(64∼65쪽)

책은 이밖에도 미취학 아동들에게 과학교육을 재미있게 제공하는 ‘사이언스랩’, 사회적 취약계층의 부모를 계도해 자녀 교육에 힘을 쏟도록 하는 ‘부모 회사’, 매 맞는 아내들의 문제를 의사들이 나서 치유하고 예방하는 ‘게지네’, 학교 캠페인을 통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바로잡으려는 ‘IM’, 이민자들에게 모국어를 제공해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족의학센터’, 첫 출산을 앞둔 이웃을 돕는 ‘웰컴’, 구체적인 방법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씨오투 온라인’, 축구의 사회적 의미를 활요하는 ‘스트리트 풋볼 월드’ 등 다양하게 표출되는 사회 모순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현장감 있게 전한다.

박 연구원은 사회적 기업가들의 공통점을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라고 정리한다. 사회적 기업가들은 관료나 재벌, 법률가 등 세속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한 비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아가 한국의 사회적 기업가에 대한 인식의 편향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한다. 하나는 사회적 기업을 이용할 때 국가가 지나치게 앞서 나가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기업을 적용하는 영역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고용 또는 경제 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즉 고용창출이나 청년 실업의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을 대하는 한국식 접근은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목표로하는 사회적 기업의 본래 가치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다.

단편영화를 만든 32살 여성 감독이 이웃집에 ‘며칠 째 아무것도 못 먹었다.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달라’는 쪽지를 붙이고 숨진 채 발견돼 한국사회가 떠들썩하다. 책은 이런 정글 같은 한국이 진짜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평범한 사람들이 불합리와 모순에 체념하지 말고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