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깨진 청자를 품다’ 펴낸 이기영씨, 도자에 반해 경제학자서 도예가로 변신

입력 2011-02-10 17:44


한국도자재단의 이기영(56) 이사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1978년 서강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로느블 2대학에서 사회주의경제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고는 10여년간 한국에서 경제학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99년 말 세계도자기엑스포 자문을 맡으면서 도자(陶磁)의 매력에 빠졌다. 곧바로 대학에서 도자 공부를 시작해 2002년에는 아예 도예가로 변신했다. 주위에선 왜 어려운 길을 가느냐고 말렸지만 그는 몸 안에 끓어오르는 ‘예기(藝氣)’를 이기지 못했다. 신간 ‘나, 깨진 청자를 품다’(효형출판)를 펴낸 그를 9일 서울 광화문 근처 서촌마을에 있는 그의 공방에서 만났다.

그에게 먼저 도예가로 변신한 이유를 물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그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경제학자의 삶이 공허했습니다. 공무원들도 기업가들도 제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아무리 공들여 쓴 보고서라도 정책간담회에서 발표하면 끝이었고 누구도 읽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당장 효과가 나는 감기약을 처방해달라는 식으로 저를 들들 볶았죠. 그런 삶에 대해 환멸을 느끼다 도자를 만났습니다. 도자를 보는 동안만큼은 행복했어요. 그래서 도자에 제2의 인생을 걸었죠.”

학자출신답게 그는 모든 관련 논문과 책을 섭렵하는 등 도자 공부도 학문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 2001∼2002년 일본의 유명한 도자마을들을 답사했는데 느낀 점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 선조들로부터 도자문화를 전수받았지만 관련 문화를 유지하고 가꾸는 데는 정성을 다했다는 것. 그는 직접 우리 도자에 얽힌 역사를 발굴하고 새 가치를 찾기로 다짐하고 도자문화의 원형인 청자 가마터를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 등을 책으로 엮었다.

책에는 전남 영암군 구림리 가마터를 시작으로 현존하는 전국 22개 청자 가마터 중 황해도에 있는 2곳을 제외한 20곳을 샅샅이 훑어간 그의 노력과 도자에 대한 열정이 녹아있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완성된 청자 보다는 가마에서 나오자마자 도공에 의해 깨지고 버려진 청자 조각들에 그는 주목했다.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는 버려진 사금파리들을 통해 바다 건너 중국과의 연관성까지 추리하는 등 1000년 전 가마터 사람들의 삶과 예술혼을 되살리는 데 주력했다.

“기존 도자 연구는 객관적인 물증을 주로 다루다보니 대중의 관심에서 스스로 멀어졌어요. 저는 정통 도자학자가 아니니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일반인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정황을 담았으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은 아니지요.”

한 시간이 넘도록 도자의 멋과 정취를 설명하던 이 이사는 “청자는 우리 문화와 역사의 원형질이라고 해도 될 만큼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당대의 문화를 용광로처럼 받아들이고 표현해낸 청자의 소중함을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이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