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봉사로 3대 이은 ‘아프리카 사랑’… 평신도로 시에라리온 선교 사역
입력 2011-02-10 21:21
평신도로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선교 사역에 헌신하다 지난 2005년 현지에서 하나님 품에 안긴 고(故) 박문규 장로의 아프리카 사랑이 대를 잇고 있다.
박 장로의 둘째딸 은경(47·백석대 기독교문화예술학부 교수)씨와 외손녀 정온유(16·고1)양은 지난달 25일부터 2월 5일까지 시에라리온 볼리마중고등학교와 인근 교회 등을 방문,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왔다. 봉사활동에는 온유양이 재학 중인 민족사관고등학교 친구 6명도 동행했다.
볼리마중고등학교는 박 장로의 봉사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유족과 소속 교회였던 서울중앙교회가 2008년 세운 학교로 ‘박장로 기념학교(Elder Park Memorial School)’로 불린다. 680명이 재학 중이며 수도 프리타운에서 1시간 떨어진 워털루시 볼리마 지역에 위치해 있다.
봉사팀은 이 학교에 예체능 수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실기 교육을 담당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리코더와 멜로디언 하모니카 실로폰 등을 전달하고 연주법을 가르쳤다. 또 미술가와 작곡가를 소개하고 4중주 연주를 하기도 했다. 또 태권도 시범과 축구 경기도 하면서 현지 학생들과 친목을 다졌다.
시에라리온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북한의 3분의 1 수준으로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주민들에게 하루 한 끼 식사는 일상화돼 있으며 학교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다.
봉사팀은 이를 감안해 수업에 필요한 영상 자료를 천 조각에 출력해 가져갔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와 스피커를 준비했다. 또 박 장로가 생전에 출석했던 호프교회를 비롯해 그가 봉사했던 마나고야초등학교, 마나고야교회 등도 방문해 찬송가와 CCM음악을 편곡해 연주하기도 했다. 편곡은 은경씨가 맡았다.
은경씨는 “호프교회 성도와 신학교 학생들의 70%가 선친을 기억하고 있었다”며 “신자들은 나와 딸아이, 친구들을 보자 가족을 만난 듯 기뻐했다”고 말했다.
봉사팀은 이번 활동을 위해 기금도 손수 마련했다. 한 달간 모금활동에 나섰고 지난해 12월 30일에는 서울 잠실역에서 아프리카 돕기 자선 연주와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온유양은 “아프리카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봉사활동을 준비했다”며 “아직도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온유양은 6년 전 외조부 장례식에서 “할아버지처럼 살겠다”고 다짐한 이후 천안 지역아동센터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쳤고 캄보디아 고아원 등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봉사팀은 현지 학생들을 위해 ㈜영창악기가 제공한 리코더 멜로디언 하모니카 실로폰 등 악기 210점과 축구공 10개, 학용품 등을 학교에 기증했고 장학금도 전달했다.
박문규 장로는 198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서울중앙교회 장로가 된 이후 교회 봉사에 힘쓰다 인도와 일본, 인도네시아 단기선교에 참여하며 선교 비전을 키웠다. 이후 여생을 해외 선교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2002년 고신대 선교대학원 부설 전문인선교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는 3년간 영어성경을 5차례 통독하고 영어회화 공부 등에 전념하기도 했다. 마침내 2005년 1월 당시 75세의 나이에 아프리카 선교를 떠난 박 장로는 현지인 기독교 교육에 힘쓰다 사역 6개월 만에 심장 박동이 멈춰 안타깝게 별세했다.
은경씨에 따르면 박 장로는 시에라리온을 위해 91년부터 14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해 왔다. 박 장로는 2004년 발생한 시에라리온 내전으로 혼미한 상황 속에서도 자청해 떠났으며 현지 선교사와 함께 사역했다.
온유양은 “현지인 학생들 앞에서 연주할 때는 마치 영화 ‘미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며 “연주가 신통치 않았는데도 들어줘서 고마웠고 현지인들에게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온유양은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해 신약을 개발,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살리는 게 꿈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