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는 어떤 스타일?… 서울, 5가지 색깔

입력 2011-02-10 17:56


어떤 공간에 자주 가서 무엇을 구입하는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어떤 계층이 주로 모여,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지가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사람, 공간, 소비라는 세 축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서로가 서로를 규정한다.

이 세 가지 중 무엇이 더 강력한 요소인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분명한 것은 점차 소비와 사람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공장이 지어지면 그곳에 노동자가 모여들어 일정한 소비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신도시가 건설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는다. 이젠,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 선호하는 쇼핑 패턴을 편리하게 지속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문화소비 행태가 도시의 스타일을 만들고, 사람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맞는 곳에 거주하길 바란다.

도시 생활편의시설을 바탕으로 공간 연구를 시작한 교수가 시카고대 사회학과 테리 니콜라스 클라크다. 그는 1983년부터 현재까지 20여개국 7000여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긴축 재정과 도시혁신’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클라크 교수는 어떤 종류의 생활편의시설이 집중됐는지에 따라 화려함, 보헤미안, 글로벌, 전통적, 에스닉(ethnic)등 도시의 스타일을 15가지로 분류했다.

‘아시아의 메트로폴리탄’인 서울에서도 이런 연구가 처음 시작됐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변미리 박사와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장원호 교수, 클라크 교수가 공동 연구해 지난해 12월 발표한 ‘서울시 씬(scene) 지도 작성을 통한 서울 공간 특성화 전략 연구’가 그것이다.

우이동 신사동 삼청동, 가장 전통적이거나 화려하거나 에스닉한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뉴욕을 부활시켰다고 하잖아요? 감각적인 옷을 입은 도시 여성이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뉴욕의 이미지가 그려지죠. 보스턴이나 스탠퍼드에 벤처기업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아니에요. 인적 네트워크, 문화적인 코드에도 점차 사람들이 끌리는 거죠.”(변미리 박사)

‘서울 공간 특성화 연구’는 서울 424개 행정동에 있는 813개 종류의 생활편의시설에 영역별로 점수를 부여했다. 클라크 교수는 미국을 15개 지역으로 나눈 반면 서울은 에스닉, 글로벌, 화려함, 전통적, 보헤미안 등 5개 영역으로 분류했다.

예를 들어 유적지 박물관 골동품가게 전통음식점 등 한국적 색채가 있는 시설은 전통성에, 과시적·문화적·여가소비적인 호텔 탤런트학원 갤러리 등은 화려함에, 성인전문매장 나이크클럽 카지노업소는 일탈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이 강한 보헤미안 영역에 높은 점수가 부여됐다.

이렇게 분석한 결과 영역별 최상층 동은 우이동(전통적), 강남구 신사동(화려함), 역삼1동(보헤미안), 삼청동(에스닉), 구로3동(글로벌)으로 조사됐다. 우이동은 사찰 14개, 문화재 3개, 한식전문점 67개, 전통찻집이 49개로 집계됐다. 신사동은 웨딩스튜디오 198개, 서양음식점 191개, 커피전문점이 101개였다. 전형적인 서울 공간분석 프레임인 강남·강북으로 나눴을 때 강북은 전통성, 강남은 화려함 보헤미안 글로벌한 분위기가 강세였다.

“예술가와 거주자, 사업자 등이 어우러져 홍대앞이 문화적인 거리가 된 것처럼 점차 도시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새로운 문화 공동체를 형성해 갈 거예요. 한국에서는 이 연구가 초기 단계지만 한층 공간을 다각도로 볼 수 있게 해 주죠.”(장원호 교수)

다른 스타일의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정서도 제각각이다. 특이한 점은 소득·학력 수준이 가장 낮은 전통적 지역 거주민이 서울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전통주의 지역 거주민은 다른 지역보다 월 소득 280.81만원, 4년제 대학 졸업 13.4%, 전문·사무직 종사자 비율이 31.9%로 가장 낮았다.

또 전통적 커뮤니티인 향우회, 종친회 참여율이 가장 낮은 대신 인터넷 커뮤니티 참여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된 화려한 지역 거주민이 자원봉사활동 참여율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가 가장 높았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사람들 간의 온정을 저해하거나 전통적 인간관계만이 친밀함을 높여주는 것만은 아니란 뜻이다.

다국적 거주민이 밀집한 에스닉 지역은 의외로 다문화 지향성이 가장 낮았다. 변미리 박사는 “내국인 거주민들은 중국인들이 몰려들어 집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면서도 차이나타운처럼 상품화되고 지역 개발이 이뤄지길 바라는 이중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변 박사는 프랑스인이 밀집한 반포동 서래마을, 일본인이 많이 사는 동부이촌동 주민의 경우 관광지로 개발되기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 그리고 뉴욕 시카고 LA

‘서울은 뉴욕, LA, 시카고에 비해 전통성과 일탈성은 높지만 합리성과 격식성은 낮다.’

한국 미국의 공통적 생활편의시설 133개를 비교해 15개 영역으로 분석한 결과다. 미국 도시에 비해 오페라와 뮤지컬 등 문화 소비가 낮아 격식성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겉으로 보기에 서울은 도쿄보다 훨씬 뉴욕, LA에 가까워요. 그만큼 고층건물이 많고 화려해 보이죠. 서울의 상업시설을 분석하면 겉과 달리 속은 변화가 느린, 엄격한 도시라는 결론이 나와요. 좀 더 개방되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허용돼야 한다고 봐요. 익명성, 허영심, 과시성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게 도시잖아요? 그게 도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시의 자원이기도 하죠.”

클라크 교수는 화려하고 과시성이 높은 도시일수록 일자리가 많이 창출돼 지역 발전이 가속화된다고 분석했다.

소비문화적 공간 연구는 새 정치문화 분석에도 도움이 된다. 클라크 교수는 ‘좌와 우’,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큰 정부 대 작은 정부’ 등 낡은 틀 대신 ‘위계 대 평등’ 같은 새로운 정치문화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플로리다에는 고학력, 문화적 다양성, 오픈 마인드를 지닌 구성원들이 많이 사는데 이런 지역에는 문화·환경에 대한 정책 지원이 더욱 적합하죠. 소비와 문화가 강조되는 지역일수록 일자리 창출 같은 올드 정치 문화의 중요성은 떨어진다고 봐요. 그래서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한 도시 연구는 공간의 정체성을 분석하는 동시에 그 지역의 정치문화에 대한 탐구이기도 합니다.”(장원호 교수)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