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이중잣대

입력 2011-02-10 17:53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인 중에는 잠도 한국민박에서 자고 음식도 민박집에서 나오는 한국음식이나 집에서 가져온 라면을 먹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런 식생활에 반대하지 않는다. 김치 없이 하루도 못 사는 사람이 있고, 빵이나 파스타보다 쌀밥을 먹어야 소화가 잘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식생활을 해야 한다.

유학생이나 교환학생 가운데 한국인끼리 모여 살면서 한국음식을 해먹고 한인교회 다니는 것도 이해한다. 생각과 언어가 같은 사람이 모여 그 나라의 소소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을 비판할 때 들이대는 한국인의 이중 잣대는 이해하기 힘들다. 나와 대화할 때 한국인들이 항상 모범으로 꼽는 옛 동료가 있다. 한국에 산 지 10년도 넘은 그녀는 모국어처럼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음식만 먹으며 한국 술도 잘 마시는데 특히 막걸리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다.

그녀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원래 취향과 습관이 한국생활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에 온 많은 외국인이 다 그녀처럼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 때문에 한국에 온 사람은 한국어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적고 육식을 안 하는 사람이나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한국의 음식, 음주문화에 적응하기 힘들다. 당뇨나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유대교 율법에 따르는 사람, 그 밖의 다른 종교 규율을 지키는 사람, 술을 아예 못 마시는 사람도 있다.

현지사정에 맞추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고집불통이고 한국문화를 적대시하거나 무시해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단지 생활습관의 호환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니까. 그리고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현지 생활습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한국 내 외국인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해줄 만도 하다. 그런데 한국인 중에는 이민자나 체류 외국인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한 나라가 이민자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키고 문화를 배워 존중하는 것이다. 이때 자기 문화를 잊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한국어 문법을 모르거나 한국음식을 싫어하는 것이 죄는 아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삶과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적인 문제이지 공론화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체류는 많은 외국인에게 국제적 커리어를 쌓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런데 자기 나라 돈을 한국 돈으로 바꾸면서 생활습관과 도덕적 가치관까지도 바꾸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무리한 요구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몇 년마다 한 번씩 나라를 바꾸는데 그때마다 가치관을 바꿀 수는 없지 않겠는가?

외국에 살면서 자신의 문화와 생활습관을 고집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에서 외국인이 겪는 어려움도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와 남에게 두 개의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꼴이다. 다문화사회라는 것은 여러 문화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변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허울 좋은 이미지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진지한 노력으로서 다문화사회를 고민한다면, 이런 사실을 인지해야 할 사람이 많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