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CCTV 두얼굴… “당신, 사장 욕했지” 운전기사 감시용 변질

입력 2011-02-09 10:03


승객과 운전자 보호, 버스 내 범죄 예방, 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 파악 등을 위해 시내버스에 설치된 CCTV가 기사들의 노무관리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시내버스 업체인 D운수 사장 최모(37)씨는 2008년 5월 운전기사 김모(41)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뒤 해고했다. 최씨는 시내버스 안에 설치된 CCTV를 통해 김씨가 동료와 대화하며 자신을 욕한 사실을 알아냈다. 김씨는 “사장이 꼬투리를 잡아 해고하기 위해 CCTV를 찾아 봤다”며 “동료와 이야기하는 내용까지 감시해 고소한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해 11월 “모욕죄가 인정된다”며 벌금형 1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시는 2009년 성희롱, 운전자 폭행 등 범죄 예방을 위해 시내버스 내에 CCTV를 설치토록 각 버스회사에 권고했다. 서울시는 버스회사 평가에 CCTV 설치를 인센티브 항목으로 설정했다. 버스회사들은 서울시가 지급하는 성과이윤을 얻기 위해 서둘러 CCTV를 설치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서울 지역 66개 버스회사 CCTV 설치 현황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90% 이상이 시내버스 1대에 CCTV 3∼4대를 설치해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9일 “CCTV 설치 이후 불필요한 시비가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버스기사들은 회사 측이 CCTV를 모니터하며 트집을 잡아 시말서를 쓰게 하는 등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는 관련 민원이 수십 건 접수돼 있다.

한 버스기사는 “회사가 CCTV 모니터를 전담하는 직원을 고용해 근태를 관리했다”며 “CCTV를 보고 승객에게 인사를 했는지 확인한 뒤 시말서를 쓰게 하고 경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버스회사에서 운전기사로 근무하던 윤모(54)씨는 근무 중 운전석을 향하고 있는 정면 카메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카메라 렌즈를 종이로 가리고 운전하다 해고됐다.

서울시버스노조 유재호 차장은 “일부 버스회사가 CCTV를 통해 운전사 징계 항목을 찾은 뒤 매주 목요일을 ‘징계의 날’처럼 활용했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CCTV에 음성을 녹음하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매우 높다”며 “CCTV가 근로자 감시나 징계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CCTV 설치를 권고한 서울시는 인권보호 등 사후 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CCTV로 인한 민원 상담이 몇 차례 진행돼 해당 운송회사에 시정 권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며 “그러나 CCTV 관련 규정은 버스회사가 담당하고 있어 시정지시를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