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사실무회담 결렬… 유연·진지하더니 하루만에 北 변한 것이 없었다
입력 2011-02-09 21:41
남북 군사 실무회담은 9일 북측 대표단의 태도 돌변으로 다음 일정도 잡지 못한 채 결렬됐다. 전날 북측이 “밤새 논의하자”며 진지한 태도를 보여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남측은 이틀째 회담 시간에 맞춰 남북 적십자회담 수용 카드라는 ‘당근’까지 꺼내 놓았지만 결과적으로 북측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북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북한 군 당국이 하루 만에 강경 자세로 돌변한 것은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다. 북측 대표단은 오전 회담까지만 해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절충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점심 때 상부와의 조율을 위해 북측 지역에 다녀온 뒤 태도가 변했다. 북한 대표단은 작심한 듯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에 억지 주장을 반복했다. 연평도 도발에는 “남측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원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남측 입장에 변화가 없어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겠다”고 말한 뒤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다.
남측은 나름 성의를 다했다. 국방부는 당초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실무회담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표현을 일부 완화했다. 아울러 북측이 제기한 긴장완화 문제를 수용하되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먼저 집고 넘어가자고 수정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은 긴장완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북측은 남측의 언론 보도에도 불쾌감을 표시했다. 우리 측 언론이 전날 회담에서 북한이 저자세로 나왔다고 표현해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북측은 “(남측에서) 기자들에게 그렇게 설명하면 대화하는데 좋지 않다”고까지 위협했다.
◇무용지물 된 남북 적십자회담 수용 카드=남측이 이날 적십자 회담을 열자고 보낸 대북 전통문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이 회담장에서 기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적십자 회담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 다목적 포석이었다. 남측의 유연성을 과시해 남북 군사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북측이 전날 성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자 좀 더 고삐를 죄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일방적으로 회담을 깨면서 우리 측이 구상한 전략은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우리 쪽이 카드를 너무 성급하게 사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향후 전망=일정 기간 냉각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북측이 천안함 사건의 결백을 주장하며 연평도 포격은 자위적 조치였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남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 두 사건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북측의 분명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남북이 다시 얼굴을 맞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부도 북한이 ‘군사회담의 판’을 깰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려운 경제 사정, 중국과 미국의 남북대화 압력 등을 고려하면 북한이 회담을 또다시 제의해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남측 수석대표인 문상균 국방부 북한정책과장은 “우리 측이 제기한 의제와 수석대표 급을 북한이 수용한다면 언제든 고위급 군사회담에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이도경 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