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신흥국 수요급증… 지구촌 식량파동 경고음

입력 2011-02-09 18:21


‘튀니지 재스민 혁명’은 시위대가 높이 쳐들고 있는 빵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된다. 중동 지역의 도미노 정치 불안의 배경에는 빵으로 상징되는 식품가격 급등도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식량위기가 일상은 물론 정치·사회 불안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연초부터 식량파동을 예고하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현상과 원인=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자체 집계 식료품가격지수가 1월 231(2002∼2004년 평균 100)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전달보다 3.4% 올랐다. 1990년 지수 산정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특히 설탕가격지수는 5.4%, 낙농제품지수는 6.2%, 식용유지수는 5.6% 올랐다.

세계 곡창지대를 강타한 홍수와 가뭄 등 기후 불안과 신흥국의 수요 확대, 투기자금 유입 등의 여러 원인이 있다. 호주와 브라질은 연초 대규모 홍수와 화재를 겪었고 이 때문에 호주 곡물 가격은 향후 수개월간 3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아랍뉴스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호주의 생산량 감소는 중동 아시아로 수출되는 밀 등의 곡물, 사탕수수, 과일, 채소 등의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지난해 세계 최대 밀 생산지대인 러시아에 이어 최근 중국의 밀 생산지역인 북부 지역도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식품가격 급등세는 2007∼2008년 양상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 당시는 일부 곡물과 석유 가격이 문제였으나 이번에는 인도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의 수요 증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투기적 요인도 있지만 당시보다 덜해 2년 전처럼 가격 거품 붕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AFP통신은 분석했다. AFP는 전문가를 인용해 “공급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2, 3년간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와 다른 파장=식료품 가격 급등으로 미국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볼리비아의 설탕, 인도네시아의 고추 등에 이르기까지 들썩이고 있다. 미국에선 육류 가격이 오르자 고급 레스토랑에서부터 값싼 맥도날드 햄버거까지 가격 인상 행진이 이어지는 추세다. 볼리비아에서는 설탕배급제가 시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소비자물가가 지난 1월 7% 급등한 것으로 나타나자 수입 식품에 매기는 관세를 중지했다.

값비싼 식료품 가격은 특히 경제 수준이 낮으면서 식료품 자급력이 떨어지는 개도국 정권에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식료품 가격 급등 현상이 2008년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어 그 파장이 정치적인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물가고에 시달리던 튀니지 이집트 등 중동·아프리카 국가에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이런 우려는 더욱 현실감을 갖는 상황이다. 세계 주요 20개국(G20) 농업장관회담이 사상 처음 소집되는 데는 식량위기를 바라보는 글로벌 정치지도자들의 달라진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