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어디로 가나] 한 남자의 눈물로… 다시 불붙는 시위
입력 2011-02-09 18:23
잠시 주춤했던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한 남자의 눈물로 요동치고 있다.
주인공은 구글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임원 와엘 그호님(30). 반정부 시위 발생 이틀 뒤 경찰에 연행됐다가 12일 만에 풀려난 인물이다. 그는 석방된 다음 날인 8일 시위대가 운집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찾았다. 그는 이번 시위 도중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면서 “나는 영웅이 아니며 순교한 이들이야말로 영웅”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무바라크 퇴진” 구호를 외치는 순간 광장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지도자와 구심점이 없이 열정으로 모인 시위대에게 그는 이집트 민주주의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AP통신이 9일 보도했다. 차츰 동력을 잃고 지쳐가던 시위대를 그가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그호님은 방송 인터뷰 도중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숨지는 장면이 나오자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다가 “가야겠다”며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갔다. 이 장면은 많은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딸 셋과 여동생과 함께 광장에 처음 나온 상류층 주부 피피 샤우키(33)는 “어제 인터뷰를 보고 울었다. 그가 내 아들처럼 느껴졌고 여기 모인 모든 젊은이가 내 아들”이라며 “그가 더 많은 이들을 이곳으로 끌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호님의 등장에 고무된 시위대는 이날 대학교수 노조, 변호사 노조 등이 새로이 가세하면서 약 일주일 전 타흐리르 광장에 25만여명이 모였던 것처럼 규모가 커졌다. 시위에 참가한 퇴역 육군 장성 에삼 살렘은 “그의 인터뷰는 국영매체가 오랫동안 감추려 한 진실의 얼굴을 보여줬다”며 “많은 이들이 진실을 봤기 때문에 이곳으로 몰려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