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거친 검사와 무능한 검찰

입력 2011-02-09 17:44


검찰은 요즘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손대는 수사마다 제대로 되는 게 없고, 여론은 싸늘하다. 아무리 비난이 쏟아져도 항변조차 못하는 처지다. 검찰 내부에서도 ‘무능한 검찰’이란 게 화두가 됐다. 최근 도마에 오른 특수수사 방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은 최근 취임사에서 “사람 중심의 수사, 보물찾기식 수사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다”며 ‘스마트 검찰’을 강조했다. 조근호 법무연수원장도 ‘수사는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상상력과 창의력에 따라 성과가 다른 예술이 아니라 누가 맡아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화그룹 수사도 실패 사례로 보는 듯한 뉘앙스다. 사실 검찰 내부에서는 한화 수사를 놓고 말들이 적지 않았다. 4개월 동안 벌인 수사 치고 성과가 별로 없었고, 밀어붙이기식 수사에 대한 피로감도 적지 않았다.

이런 여론 때문인지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은 퇴임식도 없이 쓸쓸히 옷을 벗었다. 지금은 어디론가 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떠나자 검찰 내부에서는 “한화 수사는 비판하더라도 ‘검사 남기춘’까지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그처럼 뚝심과 돌파력이 있고, 원칙에 충실한 검사가 몇이나 되느냐는 것이다. 그의 검사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남은 검사들의 비통함도 수긍이 간다.

남 검사는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당시 강력부 검사로 시작해 거친 바닥을 돌아다녔다. 밀렵꾼을 잡겠다며 수사관들과 한 달 동안 지리산에 잠복하기도 했다. 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 때는 옷 벗을 각오로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에 뛰어들었다. 강력부에서 동고동락했던 심 고검장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그는 그후 4년 가까이 한직을 떠돌았다.

그는 2003년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휘하의 중수1과장으로 복귀했지만 다시 시련이 닥쳤다. 현대 비자금 수사를 하던 중 정몽헌 회장이 자살해버렸다. 보통 검사였으면 좌절했겠지만 안대희-남기춘팀은 대선자금 수사로 돌파했고, 전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때 사퇴 여론에 시달렸던 안 중수부장은 “내가 남기춘 같은 애들을 챙겨야 하니까 검찰을 못 떠난다”고 했다는 후일담도 들린다.

이랬던 스타 검사가 몇 년 만에 ‘구시대 칼잡이’ ‘거친 검사’란 오명을 안은 채 검찰을 떠났다. 저돌적인 수사 스타일은 ‘비과학적인 수사’란 낙인으로 바뀌었다. 격세지감이다. 무능한 검찰이란 비판까지 남 검사와 정통 특수통들이 뒤집어쓸 처지다.

그러나 특수통들은 이런 비난에 울분을 터트린다. 그들은 권력에 휘둘리는 인사 시스템과 수뇌부의 잘못된 인사 실험이 되풀이되면서 검찰의 무능을 초래했다고 반박한다. 사실 역대 정권마다 검찰은 끊임없이 권력의 견제를 받았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에 당했던 인사들의 ‘검찰 손보기’가 되풀이됐다. 검찰 인사 때 특수통들이 주요 타깃이 됐다. 그래서인지 특수부 출신이 검찰총장까지 오른 사례는 많지 않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이른바 ‘칼잡이’란 경력이 핸디캡이 될 수 있다는 인식도 퍼졌다. “뚝심 있는 검사보다 융통성 있는 검사가 잘나간다”는 푸념과 함께 ‘검찰의 관료화’ ‘관료 검사’란 용어도 나왔다.

김준규 검찰총장 역시 취임하면서 이른바 ‘통’이란 관행을 없애겠다며 기획통들을 특수라인에 배치하는 시도를 했다. 이른바 ‘품격 있는 수사’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후 검찰이 손대는 수사마다 뒤끝이 좋지 않았다. 특수통들은 “섣부른 칼잡이가 칼을 휘두르니까 그런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이런 탓인지 김 총장은 다시 강한 검찰을 천명하면서 ‘전공’을 살려주는 쪽으로 회귀했다.

뚝심 있는 특수통은 큰 사고를 칠 것 같고, 점잖은 검사를 쓰자니 무능한 검찰 소리를 들을 것 같아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검찰이 그토록 바라는 스마트하고 과학적인 ‘칼잡이’는 어떤 모습일까.

노석철 사회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