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시장에 나가 길을 묻다
입력 2011-02-09 18:03
왜 명절 뒤끝의 시장풍경이 궁금해졌을까. 명절 대목을 앞두고 사람들로 복작이던 시장풍경이야 굳이 안 봐도 눈에 훤하지만 명절 뒤끝의 시장풍경은 사진 속에서나 목도했을 뿐 일부러 찾아나서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사라진 텅 빈 시장은 얼마나 고적하고 적막할까. 그 고즈넉함과 여유가 보고 싶었다. 왁자하게 흥정붙이는 소리도 없고, 흐드러지는 불빛도 찾아볼 수 없지만 사람들이 떠난 그 자취만으로도 따뜻하지 않을까.
기약 없는 이별이라면 그 자리가 더없이 쓸쓸하고 허전하겠지만 장마당은 다시 열린다는 기대가 있어 그 비어있는 자리마저 또 다른 삶의 기척으로 여겨진다. 어쨌거나 나는 시골 오일장이 파한 뒤의 적막한 풍경과 흡사할 것이라는 예단 속에 나갈 차비를 차렸다.
명절 뒤 시장,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섣부른 예단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번다한 대목장을 지내고 나서 하루 이틀 근신하며 고단한 몸을 쉬일 수도 있으련만 상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가 좋지 못해 별 재미를 보지 못한 탓에 이렇게라도 나와 하루 품을 벌어야 살 수 있다는 상인들의 말이 고달프게 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적막하고 고적한 빈 장터보다 사람냄새 풍기는 그 시장이 더 반가웠다.
장마당이라면 역시 사람이 있어야 제격이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모두 말라버린 듯 윤기 없는 얼굴에 몸피마저 작아 마치 바람 빠진 공을 닮아있었다. 그 할머니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 무말랭이와 호박고지를 펴놓고 앉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직접 만든 것이라며 무말랭이를 집어보이는 할머니의 손은 곱을 대로 곱아있었다. 무춤 나는 멈추어 섰다. 정말, 저 할머니가 만들었을까. 행여 조악한 수입품은 아닐는지. 가끔, 마른 나물가지나 곡식들을 들고 나와 인정에 호소하는 할머니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내심 미심쩍어 했다.
게다가 지난 계절의 무값이 참으로 비싸지 않았던가. 이런저런 생각에 다른 사람들처럼 무심히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망설이자 할머니는 비닐봉투를 찾아들고 갈퀴 같은 손으로 호박고지를 집어넣었다.
강제로 안기다시피하는 할머니에게 나는 어정쩡하게 호박고지 대신 무말랭이를 주문했다. 아직 냉장고에는 명절 뒤끝의 음식이 남아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고추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내면 나중에 입맛 없을 때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집에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편히 쉬어도 좋으련만 무슨 속사정이 있어 이렇게 추운 날에 굳이 시장에 나와 노점을 벌이고 있는지 궁금해 물었다. 내 오지랖에 할머니는 구시렁거리듯 대답했다.
“이유가 뭐가 있겠어? 돈 벌러 나왔지. 내가 벌어야 먹고 사는데 어떻게 해? 손주 녀석들도 가르쳐야 하고. 자식들 있는 거 내가 박복해 다 잃고 여직 이러고 있는데.”
무말랭이가 할머니를 똑 닮았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물기만 사라진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밀한 속사정이야 어찌됐든 할머니는 작은 몸과 곱은 손으로 억세게 삶을 움켜쥐고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 탓을 하며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지를 때 할머니는 남의 발치에 앉아 그렇게 가족의 하루를 책임지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것은 무말랭이가 아니라 할머니의 목숨이었고, 손자들의 삶이었다. 그저 수굿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사는 할머니의 모습이 장하게 여겨졌다.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노변에 앉아있는 저 할머니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일까. 천국은 할머니의 것이라고 말씀드리려다 그냥 물러났다. 어쩌면 할머니 또한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고 보니 쭈글쭈글한 게 무말랭이가 할머니를 똑 닮았다.
■ 은미희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2001년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문학상을 받았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나비야 나비야’ 등 다수. 광주(光州)순복음교회를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