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돌을 내려 놓으라
입력 2011-02-09 17:40
요한복음 8장 1∼11절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주인공 장 발장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한마디로 선포하는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외동딸마저 죽고 난 다음에서야 작가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만든 작품입니다.
전과범 장 발장은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의 기물을 훔쳐간 도둑을 관대하게 대해주는 사제의 한마디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사제는 장발장을 돌려보내며 “그것을 판 돈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사용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그가 새 사람이 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스토리입니다. 은혜를 입은 주인공은 제일 먼저 불우한 소녀를 입양해 돌봐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의밖에 모르는 형사 자베르는 20년 동안 장 발장의 뒤를 추적하며 그의 허물과 범죄를 찾습니다. 결국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 사랑을 모르는 경찰은 전과범이 변해 새 사람이 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센강에 몸을 던져 죽고 맙니다.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선언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손에는 율법과 정의라는 돌이 들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돌을 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의 손에도 은혜라는 하나님의 마음보다는 율법과 정의라는 돌을 들고 서서 바라보는 매서운 눈초리가 더 많습니다. 마치 죄인을 끌어다 놓고 곧 돌로 치려는 순간들입니다.
그럼, 관용의 마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요. 예수님은 밤에는 감람산으로 가셔서 쉬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가르치셨습니다. 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과 정의라는 잣대를 들고 다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전혀 몰랐습니다. 마음은 닫혀 있었으며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관용은 기도하는 자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기도하신 주님에게는 관용과 온유가 있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정의와 율법을 주장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돌을 들고 있는 자들의 사이에 섞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자기 눈 속에 숨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정죄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독선과 편견에 사로잡혀 손에 돌을 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는 현장을 점거했던 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 둘씩 물러갔습니다. 마치 바다의 성난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주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손에서 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정의와 율법보다 관용과 온유가 있어야 합니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던 분노한 무리들은 다 돌아가고 오직 죄인만 남았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죄인만 서 있었습니다. 죄인은 주님이 필요할 뿐입니다. 주님은 여인이 용서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지금 누가 서 있으십니까? 우리의 허물을 보시고도 관용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거기서 돌에 맞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손에서 돌을 내려놓고 선한 사업에 눈을 뜨라 하십니다(딤전 6:18). 돌을 내려놓으면 의인의 길이 보입니다. 돌을 내려놓을 때 우리 앞에 서 계시는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극범 목사(파리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