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어디로 가나] 중상류층 “무바라크가 왜 물러나나…” 변화에 거부감
입력 2011-02-09 00:20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북서부 무한디신(mohandeseen) 지역을 8일 오후(현지시간) 찾았다. 연일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이 지역은 카이로에서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다.
외국 유명 브랜드 상품 매장들이 즐비했다. 고급 자동차 판매점과 은행, 패스트푸드점도 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옷차림부터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와 달랐다. 남성들은 깔끔한 양복차림이고, 여성들은 서양식 정장이나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견해는 타흐리르 광장 반정부 시위대와 큰 차이를 보였다.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리버티 타워’의 관리인(45)은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하더니 “왜 무바라크가 물러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는 그들의 의견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무바라크는 영웅이다”고 말했다. 그는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에서 무바라크가 활약했던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승리한 사실을 강조했다.
무한디신 지역의 포아드 무히 엘 딘 광장에선 지난 4일 대규모 친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수천명이 모여 “우리는 무바라크를 지지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청년들의 공연한 시위로 인해 외신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쓸데없는 혼란만 야기했다고 여겼다.
이곳에는 이날 교통 체증만 있을 뿐이었다. 상점들은 만약의 약탈에 대비해 신문지와 페인트 등으로 가렸던 유리창을 청소하고 영업 재개를 준비 중이었다.
운송업체 DHL의 직원 아흐메드 패트히(25)는 반정부 시위가 결국 먹고 사는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잘사는 사람들은 변화나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이 없다. 국민의 30~40%는 무바라크가 당장 물러나길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중상류층은 무바라크 집권으로 인해 보장되는 ‘사회적 안전’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집트 중상류층의 이런 생각은 무바라크의 건재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먼저 지난주 친정부 시위대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공격의 토대를 제공했다. 미국이 처음엔 망설이다가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던 것이나, 다시 ‘점진적 권력 이양’ 쪽으로 기운 데도 이런 중상류층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일각에선 이집트 중상류층의 정치 무관심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견해도 있다. 무바라크 집권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청년층과 소외계층의 정권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무바라크에 더 불리할 거라는 전망이다. 무바라크의 비리와 부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산층 남성은 자신의 아내가 처음엔 무바라크에 동정의 눈물을 보였지만 무바라크가 거액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무바라크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