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어디로 가나] 노래… 춤… 결혼식… ‘축제의 광장 타흐리르’
입력 2011-02-08 22:00
이집트 수도 카이로 중심의 타흐리르 광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가 길어지면서 분노와 투쟁을 넘어 축제와 해방의 장이 돼가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박수치고, 환호한다. 누군가 반정부 구호를 외치면 수백명이 따라서 외치고, 구호 장단에 맞춰 밸리댄스를 춘다. 한 중년 남성이 아랍권 인기 오락인 시 낭송을 하자 청중은 박수로 운율을 맞춰준다. 고운 히잡을 두른 젊은 여성과 어린이, 가족 단위 시위대는 기념사진을 찍는다. 차 과자 주스 등을 파는 상인들 옆에는 젊은이들이 둥글게 모여 현 정국이나 하루 일과 등에 대해 논의한다. 정치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건 실로 몇십년 만이다. 이들의 얼굴은 해방감으로 한껏 들떠 있다고 AP통신이 8일 보도했다.
7일엔 아예 광장 한복판에서 이집트 전통 결혼식이 치러졌다. 그 주인공은 아흐메드 자판(29)과 올라 압델 하미드(22). 이들의 결혼식 행렬이 광장에 들어서자 시위대는 양쪽으로 늘어서 행진 구호에 맞춰 “우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외쳤다. 이들의 성혼선언문이 낭독되자 수천명의 시위대가 일제히 환호하며 이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신랑 신부도 ‘하객’에게 꽃과 셔벗을 돌려 답례했다.
심리학자인 신랑 자판은 “시위대는 이제 가족이다. 우리는 지난주 이 광장에서 함께 살고 웃고 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행복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신부 하미드는 “이집트 국민 수백만명과 이렇게 끈끈한 사랑과 애국심의 결속을 이룬 뒤에 우리가 광장을 떠나기는 어려웠다”며 “광장을 떠나 외딴 홀에서 결혼식을 열거나 이 광장 시위대 사이에서 식을 올리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후자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시위가 장기화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이 생겼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사람들, 이들에게 마실 것과 치즈 샌드위치를 가져다주는 사람들, 각종 약품을 공급해주는 자원봉사자들, 광장 상황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위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은 없지만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 흥겹게 춤추고 격정적인 구호를 외친다. 광장에는 새벽까지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저기 텐트를 치거나 담요를 준비해 온 일부 시위대는 아예 광장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 같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이집트 경찰 당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아직 남아 있다. 최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가 시위 참가자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시위대는 이를 못 믿는다.
광장의 시위대가 검문소를 설치해 지난주 자신들을 공격한 친(親)무바라크 시위대의 광장 진입을 막고 있지만 사복 차림의 정보요원들이 침투해 시위대 색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두려움도 여전하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