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개헌 의총] 참석률 높았지만… 親朴 침묵 속 親李만 ‘개헌’ 목청
입력 2011-02-09 00:16
국회에서 8일 열린 한나라당 개헌 의총은 높은 참석률에도 불구하고 다소 맥빠진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친이명박계 의원들은 마치 레코드판을 틀어놓은 듯 개헌의 당위성과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권력 분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친박근혜계 의원들은 아무도 나서서 발언하지 않았다. 지난해 ‘세종시 의총’을 계기로 친이·친박 갈등이 폭발했던 것을 의식한 듯 양쪽 모두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세종시 재판 될까 조심조심=평소 의총장에 나오지 않던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개헌 논의에 불을 지펴 왔던 이재오 특임장관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장관은 대신 자신의 트위터에 “개헌을 두고 친이와 친박이 서로 다투거나 얼굴을 붉힐 아무런 이유가 없다. 개헌 때문에 당이 갈등하거나 분열될 이유가 없다”는 글을 올렸다. 두 사람은 불참했지만 의원 출석률은 높았다. 소속 의원 171명 중 134명이 원내대표단에 참석 의사를 밝혔고, 130명이 참석했다. 친박계 의원들도 50여명 중 30여명이 의총장에 나왔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과 비서실장 격인 이학재 의원 등 상징적인 인물들이 모두 자리를 지켰다. 행여 친박계의 비협조로 개헌 논의가 안 되고 있다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듯했다.
공개회의에선 국회 미래헌법연구회 공동대표를 맡아 개헌 논의를 주도해 왔던 이주영 의원이 과거 개헌 논의 과정과 성공적인 개헌을 위한 제언을 장장 40분간 풀어놓았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 때처럼 계파별로 나눠져 (싸워선) 안 되겠다”면서 “특정 정파 지도자의 개헌 주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찬성론자들 발언 이어져=비공개 회의에선 개헌 찬성 의견이 쏟아졌다. 박준선 의원은 “전면적인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권력구조로 논의를 좁혀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개헌을 위해서 대통령도 적극 나서야 한다”며 향후 열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 대통령의 영수회담에서 개헌 논의를 하라고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권택기 의원 등 상당수는 당내 개헌 논의를 위한 기구와 국회 특위 구성을 의총에서 결정하자고 했다.
구제역 등 민생 현안이 쌓여 있는데 무슨 개헌 논의냐는 야당과 개헌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영우 의원은 “구제역을 겪으면서 오히려 개헌 필요성을 더 느꼈다”면서 “대통령이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효율적으로 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승덕 의원은 “구제역 때문에 개헌을 못한다면 우리나라 소가 살아있는 한 개헌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찬성 주장만 나오자 권성동 의원이 “이런 토론은 무의미하다”며 의총 중단을 건의했다. 이에 민본21 간사인 김성태 의원이 “다른 의견이 있다”며 손을 들고 나가 “전세난, 구제역 등 시급한 민생 문제가 많은데 지금 개헌 논의를 하는 게 맞느냐”고 지적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측근인 차명진 의원도 “논의만 하다 그칠 우려가 크고, 대통령 권력 분산은 현행법을 고쳐서도 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정상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자 정두언 최고위원과 정태근 홍정욱 의원 등 소장파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의총 도중 나오면서 “여당이 대통령의 권한이 강대하다며 분산시키기 위한 개헌을 하자는 것은 생소하다”고 꼬집었다. 결국 의총 막바지엔 참석자가 50여명에 그쳤다. 안상수 대표 등 지도부는 오후 6시쯤 의총이 마무리된 뒤 “반대 토론이 적어 아쉬웠다”면서 9일 의총을 지켜본 뒤 10일 의총 개최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김나래 노용택 유성열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