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세대 담담한 로맨스, 동화같은 잔잔한 감동… ‘그대를 사랑합니다’

입력 2011-02-08 21:22


추창민 감독은 “나는 배우들에게 ‘묻어갔다’”고 말했다.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가 주인공의 부모나 조부모가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두고 한 말이다.

지금쯤 현역에서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났대도 이상하지 않을 네 배우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다름 아닌 멜로다. 퇴임한 뒤 우유배달을 하고 있는 만석(이순재)은 어느 날 새벽 수집한 폐지를 수레에 실어 힘들게 골목길을 올라가는 송씨 할머니(윤소정)를 만난다. 여러 번 마주치며 오래 잊었던 설렘을 되찾아가는 두 사람. 이들의 주위에는 치매를 앓는 아내(김수미)를 보살피는 군봉(송재호)이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인생의 황혼녘에 펼쳐지는 로맨스를 동화처럼 그려낸 판타지다. 노인들의 가난과 질병, 고독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낸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판타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건 감독의 말마따나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네 배우는 누더기 같은 삶 속에서 외로움과 사랑을 함께 안고 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연기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화려한 배경도, 미모의 배우도 존재하지 않는 이 영화가 빛나는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건 어설피 ‘노인’을 정의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슬픔의 순간은 있을 터이지만, 누구나 불행한 건 아니니 슬픔이 불행이 되고 기쁨이 행복이 되는 건 무엇 때문인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툭 던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젊은이들과는 삶의 모습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노인들도, 결국은 모두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도 새삼 깨우친다. 영화 말미 객석 군데군데 흐르는 울음소리에 전염될 필요는 없지만, 여러 가지 상념에 젖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오달수 송지효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할 일을 다했다.

20∼30대 관객이 장악한 2011년 극장가에서 자극적이지도 거칠지도 않고 소위 ‘티켓파워’를 갖춘 스타도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어떤 특수효과도 선정적인 장면도 없이, 그야말로 이야기만으로 승부하는 영화에 관객들은 기꺼이 9000원을 지불할까.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전체관람가. 17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