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바울 (11) 문맹퇴치센터 3곳 운영, 말씀도 전해
입력 2011-02-08 17:33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문맹퇴치센터는 3개다. 전부 빈민촌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중 깔레칸 지역에 살고 있는 13세 여자 아이가 생각난다. 아이는 시골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10세 때까지 성장하다 부모를 따라 델리로 이사 왔다. 아이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자연히 센터와 연결됐는데 6개월 만에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됐다. 또 말씀을 배우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나는 학습 능력이 남달랐던 이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몇 군데 부탁을 해 학교에 입학하도록 했다. 1년 만에 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공부를 잘했다. 아이는 힌두어, 우르두어뿐 아니라 영어도 잘하게 됐다. 아이는 신앙도 성장해 부모의 동의를 얻어 지난해 부활절 침례도 받았다. 아이는 커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나는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지난해에는 기아대책을 통해 딘도리라는 시골 마을에서 우물 파는 사역을 했다. 충북 어느 마을 김부순 할머니께서 평생 아끼고 모은 헌금으로 판 우물이었다. 우물을 판 이유가 있었다. 딘도리에서 자주 집회를 열었는데 갈 때마다 마을에 물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씻을 물은커녕 먹을 물도 없었다.
사람들은 물이 없어 개울에서 졸졸 흐르는 뿌연 흙탕물을 가라 앉혀 마시고 있었다. 나 역시 갈증이 너무 커서 그 물을 마셨다. 입을 대자마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 이후 우물 생각이 간절해 기아대책에 문의했고 마침 김 할머니께서 자신의 돈을 헌금해 지난해 하반기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200m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사방 10㎞ 이내에 있는 주민들을 살리고 있다. 아직도 인도의 시골은 물이 없어 10∼15㎞씩 걸어 다녀야 하는 곳이 허다하다.
센터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는 전도사 가운데 따라 씽 형제가 있다. 가난한 시골 힌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힌두 미신에 찌들어 살아 왔다. 그는 자라면서 힌두 신에게 잘 보이고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하여 힌두 사찰에서 ‘뿌자’(힌두인들이 하는 예배)를 드리고 부적을 사서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그가 16세 되던 때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다. 계속 말라갔다. 그러던 중 마을 힌두 점쟁이가 발병 이유가 그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목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형제는 목사를 죽이기만 하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회가 되면 죽일 준비를 했다.
씽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 그 목사가 자기 집 앞으로 지나가면 뒤에서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죽을 결심을 했다. 어느 일요일, 씽은 목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뒤를 쫓아가 죽이려 했다. 순간 목사님이 형제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함께 모임에 가자고 했다. 그러자 이상하게 목사님을 찌르려 했던 팔의 힘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목사는 그를 안아 예배드리는 집으로 데려와 성도들과 함께 보살피기 시작했다. 예배에서 씽은 자신의 몸이 새처럼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기도를 마치자 씽은 자신의 병이 치유됐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그 이후 하나님을 믿어 신학 공부까지 하게 됐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정말 예측을 불허한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