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원 도둑에 대한 노신사의 용서…법원도 감복
입력 2011-02-08 23:22
김모(83) 할아버지는 재일교포다. 일본에서 사료공장을 운영하다 5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2년 전 충북 진천에서 식당을 차렸다. 말년에 귀국한 고향이지만 낯설었던 고국 땅에서 떳떳한 한국인으로 살고 싶었다. 식당을 운영하던 김씨에게 종업원 조모(62·여)씨는 딸과 같은 존재였다.
거동이 불편하고 한국말을 잘 못하는 김씨의 식당에서 일하던 조씨는 김 할아버지를 정성껏 모셨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통장 잔고를 확인하다 덜컥 주저앉았다. 누군가 몰래 자신 명의의 현금카드를 만들어 200여회에 걸쳐 1억7000만원의 돈을 인출한 것이다.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바로 김씨가 딸처럼 아끼던 조씨였다.
남들 같았으면 2억원에 가까운 돈을, 그것도 그토록 믿었던 사람에게 도둑맞았다면 엄벌에 처해 달라고 호소했겠지만 김씨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김씨는 조씨에게 직접 변호인을 선임해주고 은행을 찾아가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써줬다. 그리고 조씨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은행 측 합의서를 받아 제출했다.
그는 법정에 선 조씨에 대해 “서운하기는 했지만 빨리 식당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조씨 역시 “평생 속죄하면서 피해액을 반환하고 김씨를 극진히 봉양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청주지법 형사5단독 최해일 판사는 8일 조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 판사는 “피고인의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나 여러 사정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