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역에… 與는 ‘신공항’ 野는 ‘과학벨트’로 내홍

입력 2011-02-07 23:29


총선 전 지역 민심잡기로 시끌

정치권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 간 유치전이 살벌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동남권 신공항 유치 문제로 텃밭인 영남권이 대구·경북·울산·경남과 부산으로 나뉘어 4대 1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 전쟁터는 더 넓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둔 자유선진당이 연일 충청권 사수를 외치며 앞장서고 있고, 여기에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각각 충청권과 비충청권으로 갈려 내전(內戰)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입지 선정은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지만 내년 4월 총선에서 지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의원들로서는 “꼭 우리 지역으로 와야 한다”는 현지 민심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소속 정당, 당내 계파를 떠나 오로지 ‘내 지역’을 외치는 이유다.

◇한나라당 텃밭 동남권 신공항으로 분열=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은 7일 오후 국회에서 대구·경북·울산·경남 4개 시·도의회 소속 ‘밀양 신공항 추진특위’ 위원장들과 함께 동남권 신공항의 밀양 유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조 의원은 “접근성과 경제성,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밀양이 최적지”라며 “정부는 약속대로 오는 3월에 신공항 입지선정 결과를 반드시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견 직후 특위위원장 등은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삭발식을 거행하려다 국회 경위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에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고 있는 부산 지역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유기준 의원은 “밀양에 공항을 만들려면 산 10여개를 깎아야 한다”며 “자꾸 그러면 밀양 입지가 부적절한 이유를 우리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당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우리도 정부에 투명하게 선정을 해 달라는 것이고, 그 결과는 가덕도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조 의원 회견에 앞서 김무성 원내대표를 찾아가 조 의원 회견을 자제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는 양측에 확전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이미 이전투구 양상으로 비화된 상황이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문제로 대구, 부산 의원들이 만나기만 하면 싸우려고 한다”며 “이렇게 되면 지는 쪽은 다 죽는다”고 우려했다.

◇과학벨트는 충청권과 非충청권 간 전쟁=과학벨트 전선은 더욱 복잡하다. 지난 1일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는 공약집에도 없다’며 원점 검토 발언을 한 뒤 선진당은 총공세 모드다. 권선택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공약집)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검증작업을 하겠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청와대, 국무총리실에 공개질의서와 관련자료 요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충청권 출신 인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충청몫 지명직 최고위원인 박성효 전 대전시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역 민심을 전하려다 안상수 대표 등 지도부로부터 제지당했다. 그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신년 좌담회 때 대통령이 하신 말씀에 충청도민은 분노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비공개 회의에서 지도부는 “충청도 민심을 이해하고 있고, 관련법이 4월에 발효되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대구 경북 등 다른 지역 의원들은 연일 자기 지역 유치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충청권과 호남권 의원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호남권 의원들이 ‘과학벨트 충청 유치’라는 당론을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전남 의원들은 8일 국회에서 과학벨트 호남 유치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집단행동에 돌입한다. 호남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민주당 김영진 의원과 박주선 최고위원은 광주·대전·대구 등 3곳을 묶어 과학벨트를 조성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충청권 의원들은 “당론 번복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식이면 분당하겠다”며 극렬하게 맞서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론대로 했다가 정부에서 충청 외의 다른 지역을 선정한다면 호남 민심이 더 크게 들끓을 것”이라며 “당 지도부가 당론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어느 한쪽의 양보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나래 엄기영 유성열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