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동북아의 역사문제와 미국의 리더십’
입력 2011-02-07 17:28
근래 일본·중국과 역사해석에 관련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일단 논리적 대응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깊이 빠져드는 이유는 감정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진정되고 나면 그 문제가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음을 돌아보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감정이 앞서는 것은 바로 그 문제들이 우리들의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건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이 지역의 국제역학 구도와도 관련이 있다.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한 번쯤 묻게 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입장이다.
이 문제에 학술적이며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한 연구 결과물인 ‘동북아의 역사문제와 미국의 리더십’(케임브리지대 출판부)이 출간됐다. 편집자인 프린스턴대 로즈만 교수는 동북아의 역사문제를 철저하게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들이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한 쪽은 한반도에 위치한 동맹국이며, 다른 한 쪽은 전략적 경쟁 및 협조관계에 있는 강대국이다.
이 책의 구성은 이런 시각을 반영한다. 첫 번째 부분은 한국과 일본, 각국의 입장에서 본 미국과의 역사갈등과 그 문제들에 대한 미국의 역사인식을 보여준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국전쟁 이후 한미관계 속에서 생겨난 반미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일본 교토산업대 도고 가즈히코 교수는 전범재판을 승전국의 독단이라고 하는 일본 내 주장을 소개하는 한편, 중국과의 전쟁은 침략이라 할 수 있으나 태평양전쟁은 제국주의자들 사이의 방어적 전쟁이라는 주장도 소개한다. 이에 대해 로즈만 교수는 일본이 문제발생의 근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한국의 반미주의가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낸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 갈등에 대한 미국의 태도와 입장을 보여준다.
도고 교수와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한·일 간의 역사갈등은 점점 복잡해지는 반면 미국의 개입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며, 미국은 대부분의 경우 중립과 불개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본다.
로즈만 교수는 역사문제에 대한 미국의 유보적인 태도는 안보 중심의 지역관계를 중심으로 한 사고의 결과임을 지적하며, 한·일 역사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일본이 쥐고 있고 일본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일왕의 한국방문과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지막 부분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야기된 한·중 역사갈등에 대한 것이다. 진린보 중국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중국의 학술연구 결과물인 동북공정에 대해 한국이 지나친 민족주의로 대응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공정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역사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역내 민족주의의 대결을 막는 방법이라고 설득한다. 로즈만 교수도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지역의 분리 주장과 간도 지역에 관한 영토문제 제기에 대비한 선제공격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동북아의 역사갈등 문제에 대한 적극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2005년 이후다. 미국의 최대관심사인 안보문제에 역사가 걸림돌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학계의 연구 참가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 책은 동북아 역사갈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연구들 중의 하나다. 아쉬움이라면 적극적 개입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운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