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7) 대학생 재능기부단체 ‘비욘드 더 마인드’
입력 2011-02-07 17:37
“재능 나누면 누구나 기부천사”
덕성여대 4학년 현지연(24)씨 등 여대생 3명은 지난달 22일 서울 묵동 푸른꿈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15명의 아이들과 함께 이면지로 노트를 만들었다. 이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미술수업을 3시간 넘게 진행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다양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센터 아이들은 수업에 푹 빠져들었다. 이날 수업은 대학생 재능기부 단체 ‘비욘드 더 마인드(Beyond The Mind)’의 정기 봉사활동 중 하나였다. 비욘드 더 마인드는 서울대 중앙대 카이스트(KAIST) 홍익대 등 전국 11개 대학 재학생들이 모여 각자 가진 재능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단체다. 지난해 5월 5일 현씨와 조진경(24·여·한성대4)씨가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발족했다. 9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입소문을 타고 회원이 30여명으로 늘었다.
회원들의 전공은 경영, 법, 시각디자인, 섬유디자인 등 다양하다. 각자의 전공에 맞춰 디자인, 영상, 정보통신, 기획홍보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 오프라인 회의를 갖고 미술, 음악, 춤, 마술, 글짓기 등 자신들의 재능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논의한다. 현재 푸른꿈지역아동센터와 서울 상계동 하늘품지역아동센터를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해 교육봉사를 하고 있으며 연 2회 시골 분교에서 재능봉사 캠프도 열 계획이다.
“애초부터 돈이나 물질로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고 할 수도 없었어요. 제 학비 감당하기도 버거운 대학생인걸요.”
현씨는 지난해 2월 라오스 배낭여행에서 만난 청년의 말을 듣고 재능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청년은 교육 환경이 열악한 라오스 아이들에게 교육봉사를 펼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에 깊은 인상을 받은 현씨는 친구 조씨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자”고 의기투합해 지금의 단체를 만들었다.
비욘드 더 마인드는 지난해 8월 2∼6일 경북 안동 길안초등학교 길송분교에서 첫 재능봉사 캠프를 열었다. 20명의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것은 ‘놀이미술’. 아이들과 함께 40m 길이의 학교 외벽에 ‘미래의 나’란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무너져가던 벽은 경찰관, 간호사, 요리사, 과수원 아저씨, 원더우먼 그림으로 채워졌다.
작가가 꿈이라고 한 김지원(13)양은 그림 대신 “이 벽이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남아 우리의 추억이 되고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게 하소서”라고 썼다. 스스로 학교 벽을 꾸미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던 아이들은 수업 후에도 한참 동안 벽화 앞을 떠나지 못했다.
카이스트에서 제품디자인학을 전공하는 김은비(25·여)씨는 아이들과 함께 나뭇가지, 나뭇잎, 자갈 등으로 뗏목, 물고기, 소금쟁이 등을 만들어 분교 앞 냇물에 띄웠다. 영어골든벨과 마술수업도 진행됐다. 아이들과 봉사단원 모두 참여 작가가 만든 티셔츠를 입고 운동회를 하기도 했다.
“재능을 나눠주는 건 어렵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냥 아이들과 함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씨는 “나와 함께 벽화를 그린 아이가 나중에 멋진 화가가 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욘드 더 마인드는 대학생 작가들이 만든 다이어리나 티셔츠, 도자기, 액세서리 등 실용적인 작품을 팔아 교육봉사 운영비를 마련한다. 한 번 벼룩시장을 열면 20만원 정도가 남는다. 조씨는 “작품을 사는 사람들도 ‘행동하는 사람(후원자)’ 명단에 오르기 때문에 제값보다 비싸게 주고 구입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참여 작가의 재능 기부에 작품 구매자의 금전 기부가 더해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씨는 “간혹 진심 없이 취업을 위한 일종의 ‘스펙 쌓기’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기운이 빠진다”고 말했다.
또 작품 판매만으로는 운영비를 대기가 빠듯해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수차례 기업들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아직 후원을 하겠다고 나선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조씨는 “초기 단계라 정식 단체로 인가받지 못했기 때문에 후원해주겠다는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비욘드 더 마인드는 이름 그대로 “생각을 넘어, 마음을 넘어, 지금 행동하라”는 게 모토다. 현씨는 “생각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용 없다”며 “마음의 여유를 행동으로 옮길 실천력만 있다면 세상은 좀더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씨와 조씨는 재능 기부가 우리 사회 곳곳에 조용히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재능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이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씨는 재능 기부가 어떤 것인지를 쉽게 알리는 웹툰을 홈페이지에 연재할 계획이다. “돈이나 물질로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나눔이란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새싹’이에요.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미래를 위한 투자죠. 아이들에게 우리의 재능을 나누면 아이들이 커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재능을 나눠줄 수 있잖아요.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모습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이용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