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선장 "물과 기름섞어 시간 끌어라" 갑판장에 쪽지. 선원들이 전한 피랍~구출,악몽의 7일

입력 2011-02-06 20:46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무사히 귀국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은 ‘악몽의 7일’을 되새기며 치를 떨었다. 폭행과 살해위협 등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선원 모두는 ‘아덴만의 영웅’이었다.

석해균(58) 선장과 갑판장 김두찬(61)씨, 조리장 정상현(57)씨 등은 ‘쪽지’를 통해 지혜를 모으고 기지를 발휘했다.

갑판장 김씨의 증언과 ‘삼호주얼리호 해적 특별수사본부’의 선원 진술 등을 바탕으로 인도양 피랍부터 아덴만 구출까지 절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했다.

지난달 15일 오전 7시45분쯤(이하 현지시간) 배의 가장 높은 부분인 선교(船橋·브리지)에서 당직근무 중이던 1등항해사 이기용(46)씨는 해적들이 삼호주얼리호 중앙부분에 사다리를 놓고 배에 오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해적이 배에 탔다”고 외친 뒤 비상벨을 울렸다. 비상벨 소리를 들은 3등항해사 최진경(25)씨는 곧바로 선내 방송으로 “해적이 배에 탔으니 대피하라”고 알리고 VHF(초단파)로 조난신호를 보냈다.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한 선원 21명이 5분도 안 돼 대피실로 모여 출입문을 잠갔다. 비상통신기로 선사 등지에 긴급 구조요청을 했다. 대피실로 이동하고 1시간 정도 흐른 뒤 해적들이 배를 수색하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총성이 이어졌다. 해적들이 배를 수색하면서 총을 난사한 것이다. 대피 후 3시간이 지났을 무렵 해적들이 해머를 이용, 대피실 천장에 있는 맨홀커버를 부수고 침입했다. 해적들은 총과 흉기로 선원들을 위협, 선교쪽으로 끌고 갔다. 대피실만 튼튼했어도 인질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위협 속에서도 석 선장은 갑판장 김씨에게 ‘소말리아로 가면 안 된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물과 기름을 섞어라. 지그재그로 배를 운항해 시간을 끌어라’는 내용의 쪽지를 돌렸다.

지난달 18일 청해부대의 1차 구출작전 뒤 해적들은 더 난폭해졌다. 석 선장과 갑판장 김씨를 소총 개머리판 등으로 자주 폭행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이 시작된 지난달 21일 오전 4시58분 날카로운 총성이 들렸고 배 곳곳에 총탄이 날아와 박혔다. 선원들은 바닥에 엎드렸다. 그 틈에 손재호(53) 1등기관사가 기관실로 뛰어 내려가 엔진을 정지시켰다.

마호메드 아라이가 ‘캡틴’(선장)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이곳저곳을 뒤졌다. 석 선장과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갑판장 김씨의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확인한 뒤 옆자리의 석 선장에게 총을 쏜 뒤 선박 아래쪽으로 달아났다.

시간이 흐른 뒤 몇 발의 총성을 마지막으로 모든 상황이 끝났다. “한국 해군입니다. 한국 선원들 나오세요. 안심하세요.” 선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이제 살았어”라며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