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명절날의 두 친구
입력 2011-02-06 17:27
명절 전날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친구와는 평소에 연락을 잘 하고 지내는 편이 아니어서 무척 반가웠다. 친구는 사람들이 받기만 하고 베풀 줄은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아마도 무슨 힘든 일이 있는 듯싶었다.
명절이 되면 맏이인 친구네 집에 가족과 친족들이 이삼십 명씩 모인다고 한다. 처음에는 친구가 기쁜 마음으로 이들을 접대했지만, 이제는 이들이 부담 없이 먹고 즐기기만 하는 것이 힘겹게 여겨진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친구는 명절을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말하면서 울먹였다.
그 친구를 힘들게 한 것은 단지 명절만은 아니었다. 친구는 결혼한 아들딸을 도와주고 있는데, 이들을 돕는 것이 점차 부담이 될 뿐더러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들이 염려되면서도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계속되는 베푸는 역할이 그녀를 점차 고갈시키는 듯 여겨졌다.
오후에 나는 또 다른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이 친구도 명절이면 많은 친족들이 집에 모이는 맏며느리였다. 그러나 이 친구는 친족들이 분담해서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친족들이 모이면 함께 만두도 빚고, 전도 부치면서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이 친구는 음식 자체보다는 가족 친족이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음식은 분담해서, 간단하게, 그리고 즐겁게 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친구는 가족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맏며느리라고 혼자 무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이기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한계를 알고, 자신의 필요를 표현할 줄 아는 여성이었지 결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두 친구는 모두 가족과 친족을 사랑하는 여인들이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사뭇 다르게 여겨졌다. 전통적으로 칭찬받는 여인은 자신을 죽이고 끝없이 가족과 친족을 위해 희생하는 여인을 일컬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전통의 울타리에 여성을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여성 스스로도 그 울타리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가족과 친족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적절하게 돌볼 줄 아는 여성을 지혜로운 여인으로 칭찬했으면 좋겠다.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