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이집트박물관과 반달리즘

입력 2011-02-01 17:16

고대 이집트 문명기행은 카이로에서 시작해 카이로에서 끝난다. 아부심벨이나 아스완, 룩소르, 알렉산드리아 등 명소가 많지만 카이로가 중심이다. 인근 기자에 피라미드가 있고, 도심에 이집트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카이로에서 가장 번잡한 곳이 박물관 앞이다. 고대 이집트 유물 12만점을 지니고 있다.

카이로박물관, 고고학박물관으로도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이집트박물관(The Egyptian Museum)이다. 1858년 이집트 고적관리 감독관으로 부임한 프랑스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전국에 산재한 유물을 관리하기 위해 1891년 세웠다가 1902년 지금의 건물로 옮겨왔다. 박물관 정원에 오귀스트 동상이 서 있다.

유물은 정말 화려하다. 1층 중앙홀에 4개의 람세스2세상이, 홀 안쪽에는 거대한 아멘호테프 3세와 왕비의 좌상이 있다. 전시장에는 벤투흐테프 2세와 어린 람세스 2세 석상 등 이름난 유물이 즐비하다. 하이라이트는 2층에 있는 투탕카멘왕의 유물들. 수염을 단 황금마스크 등 무덤에서 나온 2000여점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러나 시설은 조잡하고 관리 상태는 엉망이다. 전시장 구석에는 미처 분류되지 못한 유물이 굴러다니고 유리창에는 먼지가 쌓여 있다. 이 때문에 이집트 정부는 2002년 일본 차관을 끌어들여 기자지구에 ‘대이집트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을 건립키로 하고 2012년 가을 개관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중이다.

최근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이집트에서 자주 화면에 등장하는 곳이 박물관이다. 시위 와중에 반달리즘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박물관에 난입한 일부 시민들은 전시관 14개를 뒤져도 금이 나오지 않자 미라 2개의 머리를 잘라내고 10여점의 유물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문제는 박물관이 시위의 메카로 떠오른 타흐리르 광장과 근접해 있다는 점이다. 타흐리르 광장은 우리의 서울광장처럼 수도 카이로의 중심이다. 정부종합청사와 집권 국민민주당 당사, 아랍연맹 본부와 아메리칸대학(AUC)이 있어 매일 15만명의 군중이 여기에 모여 데모한다.

이집트가 자국의 문화재를 지키지 못하면 2002년부터 의욕적으로 벌여온 ‘유물과의 전쟁’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지금까지 3만여점을 돌려받은 성과를 거뒀으나 관리 능력을 문제 삼아 문화재 반환을 유보할 수도 있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지도자를 갈아 치우는 일 만큼 박물관을 지키는 데 신경 써야 한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