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에서 희망 찾은 출소자 조현섭씨 “이젠 설이 서럽지 않아요”
입력 2011-02-01 22:21
“전과자라 명절에 가족들 찾아가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하지만 이젠 설이 두렵지 않아요.”
프린터의 다 쓴 잉크 카트리지를 수거해 재생하는 서울 소재 한 공장에 취직해 일하고 있는 조현섭(가명·65)씨는 청송교도소 출소자다. 어느 새 줄어든 머리숱에 깡마른 체격의 그는 1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월 급여 120만원을 받아 차곡차곡 저축하고 있다. 얼마 전 결혼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10년 동안 세 차례 교도소를 드나든 상습 절도범이었다.
처음 교도소에 갔을 때는 모범수로 인정받아 가석방돼 새 삶을 살아보려 발버둥쳤다. 그러나 마땅한 기술, 재산도 없는 그에게 취업의 문턱은 교도소 담벼락보다 높았다. 환갑을 넘긴 출소자를 반기는 곳은 하늘 아래 없었다. 새벽 용역시장에 나가 소일거리로 번 돈으로 여관방을 전전했지만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결국 하루 세 끼가 제공되는 교도소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도둑질을 했다. 그렇게 세 차례 악순환에 빠졌다.
2009년 겨울 청송교도소에서 출소를 앞두고 있던 조씨는 동료 재소자로부터 서울 면목동에 출소자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단체 이야기를 들었다. 교도소에서 나온 뒤 그는 ‘담(교도소) 안에 있던 이들을 품는다’는 뜻의 담안선교회를 찾았다. “저도 전과자예요”라며 미소로 반긴 임석근 목사는 출소증만 보고는 아무 조건 없이 방을 내주고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의지는 있었지만 살 길이 없어 재범의 늪에 빠졌던 그에게 취업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담 밖(사회)이 무서웠어요. 살 길이 없어 다시 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일하게 되면서 살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조씨는 이번 설에는 아내와 함께 처갓집을 찾을 계획이라고 1일 말했다.
담안선교회는 조씨와 같은 무의탁·무연고 불우 출소자가 재범을 저지르지 않고 새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무상으로 숙식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알선하고 있다. 1982년 시작했으니 벌써 29년째다. 지금까지 출소자 5000여명이 이곳에서 새 희망을 찾았다. 처음에는 작은 단독 주택에 출소자를 재우며 사회적응을 돕기 시작하다 2001년 8월 폐(廢)카트리지를 수거·재생하는 공장인 ‘자활원’을 세웠다. 출소자에게는 무엇보다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자활원은 지난해 9월 법무부로부터 출소자를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 인가를 받았다. 사회적 기업이란 일반 기업처럼 이윤을 창출하지만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출소자를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는 자활원이 처음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담안선교회를 찾은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출소자들이 재범의 늪에 빠지지 않고 사회에 적응해 새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법무부도 갱생시설 지원에 힘쓰겠다”고 했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