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용병의 손발 통역담당 2인

입력 2011-02-01 16:44


프로농구는 용병 농사라는 말이 있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매년 어떤 선수를 데려오느냐에 따라 그 시즌 팀의 성적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전타임이 되면 감독 옆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정확한 작전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훈련 때에도 용병들의 손과 발 역할을 하며 전술을 이해 시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팀 전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통역들이 바로 그들이다. 용병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통역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들어봤다.

부산 KT 정철우씨

부산 KT 통역을 맡고 있는 정철우(25)씨는 “용병들이랑 시즌 동안 거의 24시간 같이 붙어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가진 지난달 21일에도 정씨는 소속팀 외국인 선수인 제스퍼 존슨과 찰스 로드의 훈련을 돕기 위해 오전 훈련부터 열심히 이들과 코치들의 통역을 맡았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1시간 정도 남은 오전 11시. 정씨는 인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용병 선수들이 식사를 미국식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챙겨 줘야 한다. 이날은 인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파스타와 생선을 직접 싸들고 와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먹였다.

이윽고 오후 훈련과 경기가 이어졌다. 정씨의 입도 바빠졌다. 특히 시합을 할 때 다혈질인 전창진 감독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왔다. 찰스 로드를 향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씨는 “Wake up(정신차려)” “Focus(집중해)”를 연신 반복했다. 정씨는 경기를 마친 후에도 용병 선수들의 인터뷰와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정씨는 올스타전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이태원 미장원으로 향했다. 흑인의 머리카락이 동양인과 다르기 때문에 수도권에 올라갈 때마다 이들의 머리를 손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런 정씨에게 집에는 얼마나 들어가지 못했는지 물어봤다. 그는 한참을 헤아리더니 “집에 가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서 “시즌 후에 한 번도 못 간 것 같으니 한 3개월 정도 됐을 것”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정씨는 2008년 원주 동부에서 통역을 시작했다. 햇수로는 4년째다. 농구를 하기 전에는 프로야구 히어로즈 구단의 통역을 잠시 맡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용병은 좀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일을 물어봤더니 2년 전 동부에 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해줬다. 당시 동부 선수들은 아파트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용병이었던 웬델 화이트가 묵고 있는 아파트 윗 층에서 새벽 3시에 부부싸움을 해 시끄럽게 하더라는 것이다. 다음날 중요한 경기가 있어서 이를 참지 못한 화이트는 정씨에게 연락을 해 싸움을 못하게 막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정씨는 “그래서 그 한 밤중에 그 아파트 문을 두들겨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울산 모비스 차길호씨

울산 모비스의 통역을 맡고 있는 차길호(27)씨는 올 6월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새내기 통역이다. 차씨는 초·중학교를 영국 런던에서 다녔고, 외고를 거쳐 한국외대를 졸업했다. 토익 점수가 990점 만점일 정도로 수준급의 영어실력을 자랑한다. 그를 지난 19일 동행 취재했다.

차씨도 서울에 있는 집에 비시즌 기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이번 시즌에는 지난 15일 처음 가봤다고 한다. 가더라도 부모님 얼굴만 잠깐 보고 다음날 다시 경기장으로 향하기가 일쑤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시합이 있는데다 전국을 돌아다녀야하기 때문이다.

차씨는 “어머니가 전화로 TV에서 나를 자주 봤다고 말씀하시며 큰 힘을 주고 있다”면서 “모비스 경기는 한 경기도 안빠지고 보시는데 TV에서 아들의 모습이 안보이면 바로 전화해서 왜 안나왔냐고 물어보신다”고 전했다.

처음 통역 생활을 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문화를 너무 낯설어하는 것이었다고 차씨는 전했다. 우리 문화에는 위, 아래가 있고 감독과 코치의 말과 지시는 절대적이라는 관념이 있는데 외국인 선수들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차씨는 “처음 외국인 선수들이 코치, 감독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코치가 쓴소리를 하면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한국 문화를 설명해주며 친근하게 다가서자 이제는 아예 대답을 한국말로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고 한다.

차씨에게 통역 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7연패를 하다 지난 12월 5일 전주 KCC전에서 승리했을 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려 오히려 다른 선수들의 놀림감이 됐다는 말도 곁들였다.

차씨는 “스포츠 통역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통역은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라며 “앞으로 농구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 통역 일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울산=글·사진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