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송주명] 北·日 대화 가능성과 한반도 정세
입력 2011-02-01 16:35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남북대화와 6자회담 재개가 모색되고, 북·미대화와 북·일대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북·일대화에 큰 의지를 표명한 것은 놀라운 변화다. 남북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부터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 외상은 북·일대화 추진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는데, 이 과정에서 양국 간 외교 채널이 재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자민당 정권에서도 북·일 간에는 2002년 정상회담과 국교 정상화 본회의, 2007년 국교 정상화 작업반회의, 2008년 납치 문제 실무자 회담에 이르기까지 매년 정부 간 회의가 진행되기는 했다. 그러나 납치 문제로 북한을 ‘악마화’한 국내 여론 때문에 양국 관계는 한걸음도 진전되지 못했다. 양국 회담은 사실상 북한을 압박하고 국내 여론에 ‘면피’하려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마에하라 외상의 대북 관계개선 발언은 마비된 북·일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야당 시절인 2007년 그는 “납치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북한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은 외교 재량을 좁히는 행위다. ‘평양선언’으로 돌아가 (납치, 핵, 미사일의) 종합 패키지로 해결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납치 문제를 집권기반 강화 수단으로 활용한 자민당 정권과 달리 민주당 정권은 상대적으로 납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은 향후 한반도 대화 국면을 활용해 북·일관계의 발목을 잡아온 납치 문제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북·일 국교 정상화 협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中·日 이익 각축장 된 한반도
북·일 국교 정상화를 재촉하는 주된 요인은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이다. 최근 중국은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데, 특히 나선(나진, 선봉) 지역의 항만과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는 항구의 장기적 사용권(10년 혹은 50년) 확보를 통해 동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항만설비 경비라는 명분 하에 군대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이를 부정하고 있지만, 파키스탄과 미얀마에서처럼 동해 항로의 안정화를 위해 나선항구에 군사 기능을 부여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동중국해와 동해 양면에서 중국에 포위된 태평양상의 고립된 ‘섬’이 될 수 있다.
1890년 일본 군인이자 정치가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일본의 안전을 위해 한반도를 ‘이익선(利益線)’에 포함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일본도 ‘안전보장’을 이유로 북한 진출을 서두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2002년 북·미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협력을 지렛대로 대북 영향력을 확대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위상을 높이려 할 것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자위대 파견 발언도 이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한반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직접 각축할 가능성이 크다. ‘생존’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북한은 경제자원을 얻기 위해 강대국들을 무원칙하게 끌어들일 수 있다.
한국의 평화적 주도권 절실
북한을 둘러싼 중·일의 각축은 한반도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다. 그러나 거기에 한국은 없다. 한국 스스로 한반도 대화국면을 주도하지 못하는데, 주변국이 협력해줄 리가 없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협력, 미래의 발전적 통합을 위한 확고한 정치적 의지를 갖고 북한의 합리적 변화와 주변국의 건전한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 새로운 ‘한반도 구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선 북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남북한 공통의 한반도 비전을 발전시키려는 한국의 ‘전략적 평화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 이를 전제로 주변국이 이익 각축을 넘어 한반도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협력하도록 실효성 있는 다자 협력과 양자 협력을 재구성하고 내실화해야 한다.
송주명(한신대 교수·일본지역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