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질깃질깃한 끈
입력 2011-02-01 16:32
요즘은 설날이 돌아와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갈 곳이 없다. 그런 나도 한때는 명절이면 귀성 인파의 하나였다. 시댁은 내 사는 곳과 먼 남도였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올라갈 일이 아득했다. 다섯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어떤 때는 열네 시간이나 몸살을 앓았다. 갈 채비를 서두르면 어머니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산철쭉 맹키로 삘해갖고 고생헐틴디.” 고속도로에 불을 켠 차량 행렬을 이르는 말이다.
고속도로로 들어서면 차량은 늘어나고, 속력도 떨어진다. 길은 외줄기, 브레이크를 수없이 밟으며 가는 행렬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다. 습관적으로 앞차를 따르는 일뿐, 곤곤히 흘러가는 물결 같다. 가끔 뒤에서 경광등이 번쩍이고, 사이렌이 울리며 응급차가 달려간다. 뒤이어 견인차가 뒤쫓는다. 지금쯤 길 중간의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들은 잘 도착했다는 전화벨이 울리길 기다릴 텐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우리를 태운 차가 멈춘 지 수분이 지난다. 그러자 저절로 차가 뒤로 밀린다. 깜짝 놀라 보조브레이크를 걸었는지 확인한다. 옆의 차가 움직이자 내 차가 움직이는 듯한 착시현상이다. 문득 서울로 가는 길인지, 고향으로 가는 길인지, 반갑게 맞아줄 사람 없는 도시에 왜 가야 하는지 혼돈이 인다.
고속도로의 밤은 빨리 찾아든다.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고, 산그림자가 휘장을 드리우면 길안내 표시등이 불을 밝힌다. 깜빡이는 표시등이 미미하긴 하지만 우리를 깨어 있게 하기에 충분하다. 긴 하품에 이어 졸음이 몰려오면 갓길로 서서히 차를 주차시켰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가능한 한 몸을 폈다.
너른 들녘에는 내린 눈이 가로등에 반사되어 은빛 설경을 이룬다. 하룻밤 보헤미안이 따로 없다. 차창에는 밤하늘에 펼쳐진 별자리가 또 다른 우주를 이룬다. 기실 앞뒤 가림 없이 살아온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볼 겨를조차 없었다. 1년 내내 일에 쫓겨 고향의 흙 내음과 어머니의 살뜰한 정을 잊고 살아 왔다. 알퐁스 도데는 맑은 눈으로 가장 아름다운 별을 찾아냈다는데 나는 오늘 무슨 생각으로 이 밤 깨어 있는가.
차량 행렬은 붉은색으로 반짝반짝 빛을 낸다. 점, 점, 점, 점들의 이어짐이다. 이 선은 남도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이어져 있다. 어둠 속 붉은 빛이 고와 별빛은 하얗게 빛을 잃어갔다. 그 점선이 실핏줄처럼 보인다. 끈끈한 혈맥 위에 그들은 고향의 체취를 싣고 간다. 여름내 부모의 땀이 배이고 거친 손마디 안에서 자란 고구마와 호박들, 알알이 여문 잡곡들이 닫히지 않는 트렁크 밖으로 삐죽이 내보인다.
1년에 두어 번 시간과 금전을 도로에 깔아놓으며 고행을 낙으로 삼고 다녀와야 성이 풀리는 사람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간호사는 어머니의 탯줄을 야멸치게 끊어낸다. 분리, 그것은 한 인격체의 생물학적 독립일 뿐이다. 아직도 고향은, 어머니는 끊어낼 수 없는 질깃질깃한 끈을 덧대고 있다. 그 붉은 끈이 지금 어두운 고속도로를 환하게 물들이고 있다.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따스한 촉을 밝히고 있다.
조미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