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 펴낸 김종회 교수… 고려인 작가들 한글로 쓴 작품 집대성

입력 2011-02-01 16:34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작가들이 한글로 쓴 작품이 발굴, 공개됐다. 국제한인문학회장인 김종회(사진) 경희대 교수는 지난해 여름, 카자흐스탄 현지답사 과정에서 발굴한 이들 한글 작품을 최근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국학자료원)이라는 제목으로 집대성했다.

수록 작품은 1930년대 연해주에서 포석 조명희로부터 직접 문학 수업을 받은 강태수(1909∼2001)의 단편 ‘그날과 그날밤’과 시집 ‘80고개 오르며’를 비롯해 리 왜체슬라브의 시 11편, 리시연의 수필 3편, 문금동의 단편 ‘솔밭관 토벌’, 최영근의 ‘비겁쟁이’, 김부르크의 ‘카니스트라’, 장영진의 희곡 ‘어머니와 아들’, 한진의 희곡 ‘의붓어머니’ 등 시와 소설을 망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강태수의 단편 ‘그날과 그날밤’은 강제이주 이듬해인 1938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사범대학 벽보에 실은 ‘밭갈이 하는 처녀에게’라는 시 때문에 불온분자로 낙인찍혀 북부 시베리아 원시림에서 22년 동안 격리됐던 작가의 경험을 소설화한 것이다.

김 교수는 “온갖 역사와 세월의 풍상을 다 겪은 팔순 노작가의 작품에는 아무런 시비도 욕망도 없고 다만 일생을 반추하는 회한과 초탈의 감상만 서려 있다”며 “문학적 스승 조명희, 고려인 문화의 중심이었던 조선극장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어 고려인 공동체의 삶과 그 내면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김부르크의 ‘카니스트라’는 다민족사회인 중앙아시아의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각성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로, 작가 자신이 거의 독학으로 한글을 습득한 탓에, 문법을 파괴하는 동시에 비문으로 이뤄진 새로운 한글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묘미를 더해준다.

러시아어로 휘발유통을 뜻하는 ‘카니스트라’란 별명의 16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중앙아시아의 청소년 문제를 비유적인 어법으로 서술하고 있는 등 문학적 완성도도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김 교수는 “현지 고려인들의 연령 분포나 새로운 세대의 의식 변화를 염두에 두고 보면, 이번 성과는 우리말로 작품 창작을 한 세대의 마지막 유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는 이처럼 묻혀 있는 육성 자료의 발견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외에서 발아하고 성장한 소중한 한민족 문화권 전반을 통할한다는 차원에서도 고려인 문학의 위상과 의의를 총체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그만큼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